[金과장 & 李대리] 출장의 기술‥빡빡한 일정ㆍ고문관 상사…그래도 사무실보다 백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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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을 넓혀라
'출장일기' 쓰면서 도전정신 키워, 외국어 실력 늘고 해외인맥 많아져
이러면 짜증나요
입맛 짧은 상사탓 한국식당만 '맴맴', 너도나도 "선물사와라"…부담 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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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짜증나요
입맛 짧은 상사탓 한국식당만 '맴맴', 너도나도 "선물사와라"…부담 백배
직장생활 초년병들에게 출장은 신선한 활력소다. 해외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사무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기분 최고다. 몸으로 느끼는 해외생활은 견문 넓히기에 그만이다. 짬짬이 현지 풍물을 즐기고 지역음식을 맛보는 기회를 가진다면 금상첨화다.
그렇지만 김 과장,이 대리들은 '짬밥'이 늘어가면서 깨닫게 된다. 출장은 어디까지나 업무의 연장이라는 것을.자칫했다간 현지 풍물을 즐기기는커녕 주어진 업무조차 망쳐버릴 수 있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직장인들에게 모처럼 주어지는 해외출장은 여자친구나 아내와 가는 여행과는 다른,지뢰밭 사이를 무사히 통과하며 스릴을 즐겨야 하는 어드벤처다.
◆해외출장은 견문 넓히기의 지름길
중소기업 해외영업팀에 근무하는 박현지 대리(31)는 '출장 마니아'다. 작년에만 중동 미국 유럽 등으로 6번이나 출장을 다녀왔다. 짐을 싸고 푸는 것이 지겨울 만도 하지만 박 대리는 아니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다'며 즐기는 스타일이다.
박 대리가 처음부터 출장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잔뜩 긴장해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버거웠다. 현지 풍물 익히는 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출장이 잦아지면서 달라졌다. 뭔가 배우고 가자는 목적의식을 갖게 됐다. 이를 위해 박 대리가 택한 방법은 '잠 줄이기'.잠자는 시간을 줄여 현지 관광지와 재래시장 등을 두루 돌아다닌다. 업무와 관련된 식사가 아니면 현지 음식을 먹는다. 선술집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도 애쓴다.
영어로 업무를 처리하면서 외국어 실력도 키우고,해외 인맥을 쌓는 데도 열심이다. 그는 "이렇게 하다 보니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뭐든 한번 부딪쳐 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출장가서 보고 듣는 것은 전부 생생한 공부가 된다는 생각으로 꼼꼼히 메모하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게 박 대리의 '출장 예찬론'이다
이런 경험이 작용해서일까. 박 대리는 도전정신이 있고 업무 처리가 깔끔하다는 이유로 동기들보다 1년 먼저 승진했다.
◆언어 스트레스를 넘어라
출장경험이 별로 없는 직장인에게 해외출장의 가장 큰 복병은 언어다. 모두 '만국 공통의 언어'인 보디 랭귀지를 사용하면 된다고 큰소리치며 떠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성무 과장(37)은 2003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출장갔다가 영어 때문에 크게 혼쭐난 적이 있다. 입국수속을 밟을 때 직원이 "왜 미국에 왔느냐"고 물었다. 준비한 대로 "중요한 산업시설을 보러 왔다"고 답했다. 직원은 그를 훑어보더니 별도의 대기실로 보냈다. 흑인 · 히스패닉 · 아시아인 등이 '심문'을 기다리는 장소였다.
9 · 11 테러 이후 강화된 검문 검색도 모르고 한국식으로 '산업시찰'이라고 답한 김 과장은 40분도 넘게 손짓 발짓하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 뒤로 해외 출장에 대비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사무실을 떠나는 것만으로 좋은' 해외출장 기회를 영어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어서다.
◆고문관 상사도 즐거운 동반자로
출장을 즐겁게 만들려면 '동행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최선이다. 아무리 '고문관'으로 소문난 상사라도 하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즐거운 동반자로 만들 수 있다.
벤처기업에 다니는 정진성 과장(37)은 몇 년 전 상사와 함께 인도 출장을 갔다. 업무는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언어문제도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상사 모시기'였다. 첫날 저녁부터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사는 "인도의 밤문화를 정찰하겠다"며 혼자 호텔을 나갔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지나가는 인도 사람을 붙잡고 서투른 영어로 "아이 원투 드링크,싱 앤 댄스(I want to drink,sing and dance)"라고 말했는데,주민들이 "술 취한 동양인이 행패부린다"며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호텔에서 연락받은 정 과장이 총알같이 튀어가 "인도 전통예술 공연을 보고 술을 마시려다 말이 안 통해 생긴 오해"라며 싹싹 빌어 겨우 무마할 수 있었다.
정 과장은 "이후 해외출장을 갈 때는 동반자와 최대한 친해져 문제를 야기할 소지를 미리 없애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국음식을 고집하는 상사와 출장갈 때는 "현지음식도 한번쯤 맛보시는 게 어떠냐"고 권하며 한국음식 두 번,현지음식 한 번꼴로 식사하는 식이다.
◆값싸게 물건사는 재미도 쏠쏠
물건을 값싸게 살 수 있다는 점도 해외출장 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광고대행사의 김수진 대리(31)는 해외출장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 면세점 사이트를 둘러본다. 미리 찜해둔 물건 값을 비교한 뒤 각종 쿠폰과 카드 할인 등을 동원해 예약한다. 출국장에서 예약번호만 제출하면 공항 면세점보다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 김 대리는 이런 식으로 핸드백과 화장품 등을 구입했다. "해외출장을 잘만 활용하면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게 김 대리의 설명이다.
물론 이런 이유로 해외 출장자들은 '선물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배인수 과장(34)은 업무상 출장이 잦다. 동료들은 나갈 때마다 "돌아올 때 선물 사오라"거나 "거기는 ◆◆가 유명하다더라"며 압박한다. 배 과장은 "나는 그 나라 특산물도 모르고 가는데 동료들은 귀신같다"며 "10여명에게 같은 소리를 듣다 보니 단가 싼 선물을 살 수 있는 재래시장에 가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스트레스는 명품 구매 대행이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튼살크림을 부탁하는 건 애교다. 최근엔 한 동료가 예물로 사용할 명품시계를 사달라고 부탁해 화들짝 놀랐다. 배 과장은 "말하는 사람이야 돈을 조금이나마 아껴보자는 거지만,명품을 사서 운반할 때마다 소매치기 걱정하고 세관까지 신경쓰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후관리로 화룡점정을
출장을 잘 다녀왔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보고서 작성과 거래처 사후관리까지 할 일이 태산이다. 중견기업 글로벌마케팅팀에서 일하는 이정윤 대리(30)는 2년 전 홍콩에 4박5일 출장을 다녀온 뒤 의기양양하게 A4 10장짜리 보고서를 팀장에게 제출했다가 구박만 당했다. "2~3장이면 충분할 것을 공연히 질질 늘여 썼다"며 "10장 보고서 쓸 시간이 아깝지 않았느냐"는 핀잔을 들은 것.그는 이후 무조건 두 장으로 출장보고서를 쓴 뒤 추가 자료 요청이 오면 제출하는 습관을 들였다.
삼성정밀화학 성수선 과장(37)은 업계에서 '출장의 여왕'으로 꼽힌다. 해외영업만 13년차인 그는 매번 출장 때마다 '출장일기'를 쓴다. 출장지와 바이어에 대한 기억을 꼼꼼히 갈무리하기 위해서다. 대화하며 알게 된 바이어의 취향이나 가족사항,업무 성과나 실수까지 적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오늘도 유럽출장 간다'는 책까지 낸 성 과장은 "자기가 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반하지 않을 바이어는 없다"고 말했다.
이상은/이관우/이정호/김동윤/이고운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