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재건축이 결정되는 순간,남다른 감회에 젖어든 이들이 있었다. 오랜 세월 정든 아파트 상가를 생업 터전으로 삼아온 이들이다.

은마아파트 지하상가에서 만나분식을 운영하고 있는 맹예순씨(48)는 22년째 같은 장소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다. 1988년 강남 판자촌인 포이동 구룡마을에서 전세금 350만원을 갖고 강남 생활에 첫발을 내밀었다. 1만원을 벌면 7000원을 저금하고 매일 16시간을 일하는 강행군 끝에 2004년 은마아파트에 입주,명실상부한 강남 거주자가 됐다.

지금 이 아파트의 시세는 10억원을 웃돈다. 1995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이 구룡마을에 산다는 이유로 설움을 받고 사흘이나 결석을 했던 아픔도 이젠 옛일일 뿐이다.

또 다른 은마상가에서 만두가게를 하고 있는 김신규씨(60) 역시 새벽잠을 설쳐가며 25년을 한결같이 가게를 지켰다. 주택과 상가점포 각각 2채씩을 재산으로 모은 김씨는 "은마가 헐리면 시골 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강남 상인들은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기회의 땅"이라고 입을 모은다. 진입장벽이 높다고는 하지만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겐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이 모든 것을 결정할 뿐이다. 역삼동에서 완산골명가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화씨(50)는 동부그룹에 다니다 3년 전 창업했다. 대기업을 그만둘 때 많은 이들이 만류했지만 지금은 과거 직장 연봉의 3~4배를 벌고 있다.

매일 밤 강남역 인근에서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김철호씨(48) 역시 내일을 향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수십억원을 투자한 요식업이 망한 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지만,다시 바닥에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다른 운전기사들도 대부분 목표를 정해 놓고 살아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겠다는 사람은 없어요.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오겠지요. "

강현우/심은지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