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서울대병원이 원내처방의약품(입원 환자에 사용하는 의약품)에 대한 대규모 입찰을 실시했다가 전품목이 유찰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8일 의약품도매업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이날 분당서울대병원과 치대병원이 향후 1년간 사용할 2514종의 의약품 구매를 위한 입찰을 실시했으나 모두 유찰됐다.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대병원 측이 1차 유찰 이후 입찰대행사인 이지메디컴 측을 통해 재입찰을 진행했지만 재입찰 역시 유찰됐다”며 “내주중으로 2차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서울대병원이 의약품 구매를 위한 입찰을 실시했다가 전 품목이 유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서울대 병원이 연간 원내처방으로 사용하는 의약품 규모는 연간 약 2000억원 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이번 서울대병원의 의약품 구매 입찰이 처음으로 전품목 유찰된 배경에 대해 ‘저가구매인센티브제(시장형 실거래가제도)’를 지목하고 있다.지금까지 도매상들과 제약사들은 낮은 가격에 대형 국공립 병원에 의약품을 공급했어도 이에따른 손실을 원외처방의약품(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외래환자에게 처방하는 의약품)에서 벌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가구매인센티브가 시행되는 오는 10월 이후에는 저가 공급에 따른 손실을 벌충할 수 없게 된다.정부 측이 원내처방의약품 저가 낙찰을 저가구매인센티브 사례로 간주하고,같은 종류의 원외처방약까지 모두 보험약값을 깎는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제약사들로서는 그동안의 관행과는 달리 저가 입찰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현행 규정에 따르면 100병상 이상인 대형 국공립 병원은 원내처방의약품의 경우 정부 물자 조달 개념을 적용받아 도매상을 통해서만 입찰 혹은 수의계약 방식으로 의약품을 구입하도록 돼있다.

제약업계 일부에선 이때문에 서울대병원이 구매조건을 1년치가 아닌 6개월 단위로 끊어 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 적용을 피해가거나,입찰예정가격을 제약사들이 일정 정도 이윤을 남길 정도로 올리지 않는 한 2차입찰 등 후속입찰 진행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만약 입찰이 최종 유찰될 경우 워낙 품목이 많기 때문에 서울대병원이 수의계약으로도 필요한 의약품을 제때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이렇게 되면 입원 환자들이 의약품을 처방받지 못하는 피해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