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말.트레버 힐 아우디 코리아 사장(48)은 한국에 부임한 지 약 한 달 만에 독특한 행사를 마련했다. 고성능 스포츠카 R8의 국내 출시를 앞두고 VIP 고객들을 미리 초청해 비공개 전시회를 열었던 것.프라이버시를 위해 고객 3~4명당 별도 행사를 준비했다. 전시회 횟수만 총 22차례에 달했다.

이 같은 행사를 통해 2억원에 육박하는 이 차를 10여대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해 10월 공식 출시 이전에 한국의 판매 할당량 20여대를 모두 판매 완료했다.

하지만 힐 사장의 고민은 단순한 판매량 확대가 아니었다. 국내 판매가 매년 20%씩 늘고 있었지만 전체 시장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었고,브랜드 인지도도 약하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는 우선 양적 확대보다 인력 관리를 체계화하고,서비스 네트워크를 늘리는 등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경기위축 탓도 있었지만 2008년 판매량이 전년 대비 0.5% 오히려 줄어든 이유다.

아우디 코리아는 지난해 국내에서 전년 대비 40.2% 많은 총 6664대를 판매했다. 주요 수입차업체 중 가장 큰 폭으로 성장했다. 자체 조사 결과 2006년 68%였던 브랜드 인지도는 올 1월 기준으로 81%까지 급상승했다.

◆아프리카 소년의 꿈,국가대표

"국가대표 선수가 되자." 197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기숙사 형태의 고등학교에 다니던 트레버 힐의 꿈이었다. 어릴 때부터 필드하키와 크리켓,축구,골프,테니스 등 스포츠를 '광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보다 키가 작고 힘이 약했다. 선수 생활을 하기엔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어릴 때부터 하키선수로 뛰었지만 키가 작아 선수 선발 때 제외되기 일쑤였어요. 그럴 때면 아주 화가 났죠.열심히 뛴다고 키가 커지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

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원 입대해 공수부대에 지원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였다. 앙골라 내전 때는 실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제대 후 요하네스버그의 위트워터스랜드 대학에 들어갔을 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대학 하키팀의 주전 선수로 선발됐다.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가졌다.

그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무릎 부상이었다. 1986년 병원 신세를 지면서 9개월간 좌절을 겪었다. 힐은 병원에서 스포츠 스타들의 자서전을 읽기 시작했다. 힐 사장은 "책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면 더 큰 보상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재활 치료를 더 열심히 해서 그 이듬해 남아공 필드하키팀의 국가대표 골키퍼로 발탁됐다"고 말했다.

그가 선수생활을 그만둔 것은 뜻밖에도 1988년 서울올림픽과 관련이 있다. 남아공 정부의 인종분리 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국제 제재로,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었던 것이다. 국제경기에 나설 수 없는 국가대표는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기업 교육에서 길을 찾다

스포츠만을 생각했던 힐은 대학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했다.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잠깐 교사의 길을 걷던 그는 교사란 직업이 생각만큼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눈을 돌린 분야는 '기업 교육'이었다.

1989년 남아공의 아우디 지사에 입사한 그는 8년간 현지에서 영업과 마케팅 담당,딜러 등을 교육하는 업무를 맡았다. 직원교육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힐은 아우디의 독일 본사로 승진 발령됐다. 영어와 독일어,아프리칸즈어(남아공의 네덜란드계 방언) 등에 능통한 점도 한몫했다. 그가 주로 담당한 것은 글로벌 교육 훈련.독일 러시아 영국 브라질 일본 등에 임직원들의 훈련 프로그램인 '아우디 아카데미'를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힐은 영업직 등 전 세계 직원을 대상으로 기술 및 제품 디자인,딜러 관계 등을 강의하다 문득 "내가 직접 영업을 해 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갖게 됐다. 자신의 '이론'을 실전에 접목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도전하자"는 스포츠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첫 번째 기회는 2003년 일본에서 찾아왔다. 당시 법인장이 그에게 현지 근무를 제안한 것이다. 아우디 일본법인의 조직개발부장으로 발령받은 그는 현지에서 품질관리와 수익성 제고를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애너하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도 땄다.

2년 뒤엔 중국법인으로 자리를 옮겨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했다. 또다시 2년 뒤 지사장 자격으로 한국에 부임했다. 한국과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의 3개 경제대국을 모두 경험하게 된 것이다.

3개국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수입차 시장의 특징은 상당히 이질적이란 게 그의 얘기다. "일본 소비자들은 자국 브랜드 선호 현상이 매우 강할 정도로 보수적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경제의 급격한 성장으로 자본주의 성향이 강하지요. 한국의 경우 서울,그 중에서도 강남 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

◆뗄 수 없는 한국과의 깊은 인연

힐 사장이 '한국'을 연상할 때 떠올렸던 모습은 원양어선이었다. 고향인 케이프타운에 한국 어선들이 자주 정박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생선을 좋아한다"란 선입견을 갖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 들어 남아공에도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제품이 유입되면서 한국이란 나라에 흥미를 갖게 됐다.

한국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서였다. 일본과 공동으로 대회를 치렀지만,한국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응원단의 열정에서 차이가 났다고 그는 회고한다.

한국에 부임한 힐 사장은 한국 문화에 완전히 매료됐다. 파전과 막걸리는 그가 즐겨 찾는 간식거리다. 주말에 가족에게 파전을 직접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산낙지를 먹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한국식 음주문화에는 적응했을까.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 폭탄주를 좋아한다"고 했다. 부임 첫날부터 폭탄주를 10잔 이상 마셨다는 그는 "값비싼 양주를 맥주에 타서 마시는 문화는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놨다.

힐 사장은 한국 경제가 앞으로 훨씬 더 성장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한국은 분단 후 60여년간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적인 발전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라며 "한국 소비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제품을 바라보는 안목이 높고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축구 등 스포츠로 직원들과 '하나'

힐 사장은 아우디 코리아의 직원들 사이에서 '미스터 스마일'로 불린다. 항상 웃는 얼굴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란 설명이다. 신차 출시회 등 주요 행사가 끝날 때마다 담당자들을 모아놓고 "지금까지 본 행사 중 최고였다"고 치켜세우는 일을 잊지 않는다. 금요일엔 평상복 차림으로 출근,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한다.

힐 사장은 부임 직후부터 사내 축구팀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동하고 있다. 직원들과 같이 땀을 흘리면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다. 독일에서 파견나온 직원들도 함께 어울리도록 했다.

직원들을 항상 배려하지만,정작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엄격하다는 평가다. 힐 사장은 주말마다 40㎞ 이상 자전거를 타는 등 건강관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건강이 뒷받침돼야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서울 동빙고동 자택에서 경기도 양평 양수리까지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는 것을 즐긴다. 90㎞ 구간도 4시간 반이면 주파할 수 있다고 한다.

힐 사장은 올해 A6 S라인과 Q5 3.0 TDI,뉴 A8,R8 스파이더 등 다양한 신차를 한국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최소 7000대 이상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고국인 남아공에서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열립니다. 개인적으로는 호랑이 띠고요. 올해 아우디 코리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