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2008년 정년을 맞은 생산직 고령자를 대상으로 재고용 제도를 도입했다. 정년 이후 퇴직시키지 않고 촉탁으로 재고용해 계속 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신 임금 수준은 종전보다 낮췄다. 그러자 회사는 숙련도 높은 인력을 계속 활용할 수 있어 생산성이 향상됐고,절감되는 비용만큼 신규 채용도 늘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뒀다. 나이 많은 근로자들 입장에서도 대환영이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본격 은퇴를 앞두고 확산되는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가 세대갈등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해법으로 볼보건설기계코리아처럼 재고용 제도를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계속 고용'으로도 불리는 재고용 제도는 정년퇴직 후 개별 근로계약을 맺어 단시간 근무 형태로 짧게는 1~2년,길게는 4~5년간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령자 고용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상당수 기업들이 단체협약 등을 통해 도입하고 있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단협이나 인사규정 등에 재고용을 명시한 곳은 100인 이상 사업장의 절반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시행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김동배 인천대 교수는 "재고용 제도를 활성화하면 기업으로선 일괄 정년연장에 따른 비용 부담을 덜 뿐 아니라 경험이 풍부하고 숙련된 인력만을 선택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정년연장이 청년실업과 상충된다면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도 정년을 바꾸는 기업들 중 90% 이상이 단순 정년연장보다는 계속고용 형태의 고용연장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고령자에게 겸업을 허용하는 것도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태원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청년실업과 상충되지 않으려면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정년을 그대로 둔 채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깎는 제도)가 바람직한데 이 경우 가계지출이 많은 중고령층의 소득을 감소시켜 저항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태 연구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무시간 단축으로 급여를 덜 받는 대신 제한된 범위에서 부업을 허용해 소득을 보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50~55세 근로자 10%의 근무시간을 30% 줄이는 대신 겸업을 허용하면 청년층 일자리 8만7000개가 창출되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일본과 미국에선 중고령층 겸업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숙련도나 경력 등에 따라 정년에 차별을 두는 선별적인 정년연장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실제 검토 중인 안이다. 강호인 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은 "모든 기업들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일률적인 정년연장을 도입할 경우 신규 채용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막기 위해선 숙련도나 경력 등을 고려해 회사에 정말로 필요한 인력에 한해 선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선 노동부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하는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기업부터 시범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방하남 노동연구원 박사는 "중고령자 대상의 전직지원서비스를 활성화하는 것도 단순 정년연장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대기업 은퇴자를 협력업체로 전직시키는 등 협력업체까지 포함한 광의의 정년보장 시스템이 잘돼있다"며 "이를 국내에 맞게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가 세대갈등 같은 충격없이 도입되려면 노동유연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채필 노동부 기획관리실장은 "정년연장은 여러가지 사회갈등을 수반할 수 있는 만큼 임금체계,직급체계를 손질하는 것 뿐 아니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지적했다. 강호인 재정부 국장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중간퇴직이나 희망퇴직 등 퇴출시스템이 수반돼야 세대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종태/고경봉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