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돼지독감이 유행하면서 전 세계에서 여자가 멸종된다. 이에 남자 해적 6명은 아름다운 '치어걸'들이 산다는 전설의 땅 '원더랜드'를 찾아 해적선 딕펑스호를 타고 모험을 떠난다.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사진)의 간략한 내용이다.

그런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체 어떤 희한한 질병이 여자들의 목숨만 거두어간단 말인가. 딕펑스호를 진두지휘하는 선장은 동성 항해사에게 연정을 품고 있으면서 왜 굳이 치어걸을 찾겠다며 험난한 여정에 뛰어든 것일까. 하지만 이런 의문은 뮤지컬을 즐기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어걸을 찾아서'는 B급 정서로 무장한 '이상한 뮤지컬'이니까.

이 뮤지컬의 연출,극작,작사,작곡,음악감독에 선장 역까지 맡은 송용진씨(34)는 "'록키 호러 쇼'를 본보기로 삼아 B급 컬트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너훈아'니 '이엉자' 같은 작명센스를 발휘한 잭 스패너(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 선장을 연상케 한다)의 영상 카메오 출연이나 풍랑을 만난 딕펑스호의 처지를 작은 수조 위에 띄운 종이배로 표현한 소소한 연출이 재치있다.

인기 가요의 표절 시비나 동계올림픽의 부당한 심판을 풍자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공연 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초콜릿 멀미약이나 드레스코드 설정 역시 분위기를 띄운다. B급 정서의 절정은 딕펑스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외치는 '에네르기 공격' 주문이다. 잠시 품격을 접어두고 욕설을 무한 반복하는 이 주문에 참여하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뮤지컬은 인디밴드가 연주와 연기를 병행하는 형식이다. 뮤지컬 음악은 인디밴드 딕펑스와 송씨의 음반 수록곡을 차용하거나 가사를 바꾼 것.중독성 강한 노래 '치어걸' 등이 인상적이다. 송씨는 "우리 음악창작단 이름이 해적이니까 보물은 뭘까 하다가 노래 '치어걸'이 눈에 띄었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짰다"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 홍익대 앞 상상마당에서 1회성으로 무대에 오른 이 뮤지컬은 의외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롤링홀에서 20차례 정기공연에 들어갔다. 소품 구입비와 밥값,뒷풀이 비용까지 합쳐 약 50만원에 불과한 초저예산 공연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모았고,그 기세를 몰아 대학로에 진출했다. '헤드윅'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이자 인디뮤지션으로 활동해온 송씨의 첫 뮤지컬 연출작.31일까지 서울 대학로 라이브극장.4만원.(02)548-1141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