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대체로 완벽주의자다. 뭐든 맡으면 빈틈없이 해내려 애쓰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수도 적지 않다. 대강 완성해서라도 시간을 맞추는 남자와 달리 늦더라도 제 선에서 일을 끝내려는 여자들의 이런 특성은 자라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겪은 선험 탓이란 보고가 있다.

남자는 실수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뭘"하는 반응을 얻는 반면 여자는 실수하면 "그러게 괜한 짓을 해가지고" 식의 핀잔을 듣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틀리거나 잘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잘못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 뒤에도 남자에겐 수시로 허용되는 재기의 기회가 여자에겐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다신 기회를 갖기 어렵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이 크니 함부로 대들기 어렵고 자연히 성과도 적다. 여자들 유리천장이 잘 깨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할리우드 영화판 역시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여성감독의 경우 데뷔도 어렵지만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일레인 메이는 블록버스터 '사막 탈출' 침몰 뒤 영화계에서 사라졌고,'딥 임팩트'의 미미 레더 역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실패 이후 침잠 상태다.

세상은 그러나 바뀐다. 아카데미 82년 역사상 처음 여성이 감독상을 거머쥔 것만 봐도 그렇다. 세계 영화사를 바꾼 인물은 이라크전 소재 '허트 로커'를 연출한 캐스린 비글로(58).'할리우드의 여전사'로 불려온 장신(182㎝) 감독이자 '아바타'연출자인 제임스 캐머런의 전처다.

비글로는 1979년 폭력의 속성을 다룬 단편영화 '셋업'으로 데뷔,'죽음의 키스' '폭풍 속으로' 등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스트레인지 데이즈'에 이어 2002년 작'K-19'까지 참패,남은 건 소리없는 은퇴뿐인 듯 여겨졌다. 비글로는 그러나 무명배우를 이끌고 요르단 사막에서 찍은 저예산영화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비글로의 수상은 할리우드의 다른 여성 감독은 물론 임순례(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이정향(집으로)씨 등 국내 여성 감독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데 여성과 나이 모두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사실을 입증했으니 말이다. 장르는 자유다. 비글로처럼 액션영화에 도전할 수도,낸시 마이어스(사랑은 너무 복잡해)처럼 로맨틱 코미디로 승부할 수도 있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