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한 지 9일로 100일이 됐다. 1992년 이후 17년 만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화폐개혁은 구권과 신권을 100 대 1로 교환하는 것이었다. 장롱 속에 숨겨져 있던 엘리트계층의 돈을 끌어내는 한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내수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다목적 카드였다.

하지만 물가는 되레 치솟고 민심마저 흉흉해지고 있어 당초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한이 최근 나진 · 선봉 개방등 외자유치를 통해 경제활로 찾기에 본격 나선 것도 화폐개혁의 실패를 개방으로 만회하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경제사정이 호전됐다는 소식은 전무하다. 대북소식지 열린북한통신에 따르면 쌀값은 석달 동안 45배까지 치솟았다. 환율도 심상치 않아 평양 암시장에서 1달러가 1600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2월 말 700원의 배를 넘는 수준이다.

후폭풍이 100일째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2월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자국법을 수정해서라도 외자유치에 적극 나서라고 지시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근 나진 · 선봉 개방,조선대풍그룹의 100억달러 유치작업,압록강 위화도 · 황금평 개발 등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화폐개혁을 통해 내수 경기부양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외자유치에서 그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자력으로 내수경기를 살릴 수 있는 처방은 전부 썼다"며 "북한은 일단 국가가 직접 나서 외자를 유치하고 경제자유무역지대를 조성하는 등 1960년~1970년대 '박정희 모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이와 함께 중국이 1980년 선전을 경제특구로 완전 개방했던 것처럼 북한이 8개 도시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등 새로운 개방정책으로의 방향 전환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화폐개혁은 후계구도 정착에도 차질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화폐개혁의 성과를 후계자로 지목한 3남 김정은(28)의 작품으로 꾸밀 생각이었지만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6자회담 복귀에 따른 대북제재 해제 및 중국 대북 투자 문제 등을 해결하고 이를 정은의 성과물로 전환, 대내외에 적극 알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