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일수록 R&D에 대한 불만도 큰 모양이다. 국내기업 중 R&D 투자를 가장 많이 하고,성과도 높다는 삼성만 해도 R&D에 투자한 돈이 다 어디로 갔느냐고 경영자들이 다그친다는 얘기도 들린다. '수익률''경제성''효율성' 등을 중시하는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정부도 R&D투자를 한다. 국방 등의 분야에서 정부 스스로 R&D 투자가 필요하다. 그것 말고도 정부가 R&D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R&D는 그 특성상 투자한 사람에게 성과가 전부 돌아가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이롭게 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은 그런 경우를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들에만 R&D투자를 맡겨서는 사회적으로 충분한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기초연구' 등에 나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부 R&D를 기업의 잣대로만 따질 수 없는 이유는 많다. R&D를 할 때 기업은 '사적(private) 수익률'을 따지지만 정부는 '사회적(social) 수익률'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은 '감내할' 위험수준에서 투자를 하지만 정부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투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들은 현재의 '효율성'에 집착하는 반면 정부는 앞으로 변화를 가져올 '효과성'을 더 중시해야 한다. 또 기업들은 지금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을 많이 의식하지만 정부는 미래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들을 창출하는 씨앗투자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 R&D를 지금 시점에서,기업의 잣대로만 따지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밑 빠진 혹은 깨진 독에 물 붓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지식경제부가 정부 R&D를 대(大)수술하겠다고 나섰다. 정부 R&D를 제대로 투자해 성과를 높이겠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투자 결정권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기업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는 것은,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그런 의지를 표명한 것 자체만으로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일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지경부는 정부 R&D가 '깨진 독'이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 R&D는 기업에 비하면 '깨진 독'일 수밖에 없다. 만약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완벽한 독이 있다면 그런 독은 정부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기업에 넘겨야 한다. 결국 핵심은 정부 R&D가 '제대로 깨진 독'이냐,'잘 못 깨진 독'이냐는 것이다. 지경부 지적대로 정부 R&D가 경쟁도 없이 나눠 먹기나 하는 식으로 도덕적 해이가 난무하고,공무원들이 전권을 휘둘러서 '잘 못 깨진 독'이 됐다면 마땅히 수술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 R&D를 '제대로 깨진 독'으로 만드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나라 정부 R&D는 '제대로 깨진 독'이 될 틈도 안 준 채 '독이 깨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일지 모른다. 지경부의 R&D 성공률은 80~90%에 이른다. 제대로 된 정부 R&D라면 있을 수 없는 성공률이다. 정부가 기업 R&D에 물타기를 했거나,실패를 두려워 해 성공할 만한 사업들만 골라서 했다는 의구심을 살 만하다.

물론 지경부는 앞으로 R&D 실패를 용인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나 그럴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부가 기업과 똑 같이 투자 효율성을 강조할수록 실패를 무릅 쓴 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