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일원동 중동고에서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던 '일진' 손우찬씨(35).그는 두 달 전 강남의 최첨단 트렌드를 이끄는 안테나숍이 즐비한 가로수길에 이자카야 '미카' 2호점을 열었다. 부모의 만류를 무릅쓰고 강남에 매장을 낸 지 9년 만에 3개의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사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에게 각서를 쓰다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그의 소득은 연간 1억원이 훌쩍 넘는다. 강남에 처음 가게를 낸 것은 2002년.대학 4학년 졸업반 학생이었던 그는 경희대 교수로 재직 중인 아버지에게 '각서'를 쓰고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와인바 '쿨'을 냈다. 그는 "아버지는 교단에 서길 원하셨지만 교직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았다"며 "한번만 해보고 망하면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잘나가던 로데오거리 이면도로 지하 1층에 66㎡(20평)짜리 작은 가게를 열었다.

부모님의 우려에도 가게는 손님들로 넘쳐났다. 보증금,인테리어 비용 등 초기 투자비용 8000여만원을 6개월 만에 갚았다. 좁은 가게에 손님이 워낙 북적이다 보니 하룻밤에 테이블이 4~5회 정도 돌아갔다.

◆강남서 튀던 아이,사업가로 변신

그는 대치동에서 태어나 대치초,대청중,중동고를 나온 '강남 토박이'다. 하지만 사교육에 목매는 여느 친구들과 달리 공부에는 큰 취미가 없었다. 강남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의 '아웃사이더'였던 셈이다. 대학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손 사장은 "솔직히 친구들과 노는 데만 관심을 뒀던 탓에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며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두기를 잘 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첫 가게인 와인바가 성공한 뒤 욕심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로데오거리 한복판에 330㎡(100평) 규모의 소주 바 '친친'을 열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100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했다. 손 사장은 "뼈빠지게 일했지만 손에 쥐는 돈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쓰라린 가슴을 안고 가게를 접었다. 아버지는 '각서 이행'을 종용했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철저한 시장조사를 거쳐 압구정역 인근에 이자카야를 내기로 결심했다. 손 사장은 "친구들이 하나둘 이자카야를 찾는 것을 보고 감을 잡았다"고 말했다.

가장 신경을 쓴 것은 '가게 목'이었다. 그가 미카 1호점을 압구정역 인근에 낸 것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점심메뉴를 팔기 위해서였다. 다음은 '음식맛'과 '인테리어'였다. 손 사장은 "좋은 맛을 내는 비결은 간단하다"며 "돈을 들이더라도 솜씨 있는 요리사와 양질의 재료를 쓰면 된다"고 했다.

2호점을 연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프랜차이즈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미카를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글=성선화/사진=김영우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