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76 · 사진)이 2007년 7월 신에게 무릎을 꿇었다. 온누리교회가 일본에서 연 문화선교집회 '러브 소나타'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였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전향'하자 질문이 쏟아졌다. "어쩌다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 질문은 한 가지였지만 묻는 말투는 제각각 달랐다. 안티 크리스천은 경멸조로 물었고,카뮈처럼 신 없는 순교자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은 배신자를 대하듯 질책하는 투로 말했다. 다른 종교 신자들은 금세 혀라도 차거나 한숨을 쉴 것처럼 아쉬워했고,어떤 친구는 "예수쟁이 됐다면서?"라고 비웃었다.

이처럼 다양한 질문에 대해 이 전 장관이 답을 내놓았다. 첫 신앙고백서 《지성에서 영성으로》(열림원 펴냄)를 통해서다. 젊은 시절부터 무신론자를 자처했던 그는 이 책에서 어떻게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게 됐는지를 일기와 강연,기사와 편지글 등을 통해 보여준다.

이 전 장관은 2004년 일본 교토의 연구소에서 홀로 지내며 영적 세계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때 쓴 시를 모은 것이 2008년에 낸 첫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개신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은 미국에서 검사로 일하던 딸 민아씨(50)에게 닥친 암과 실명 위기 등이 계기였다. 급히 하와이로 달려가 실명 위기에 처한 딸의 얼굴을 본 순간을 그는 이렇게 기억했다.

"나도 모르게 오,하나님 소리가 나왔습니다. …주님의 딸에게 어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

그러나 딸은 태연했다. 대신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다. 섬의 원주민들이 주로 모이는 작고 초라한 교회였다.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고,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 그리고 딸의 눈을 구해준다면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그 기도는 기적처럼 이뤄졌다. 서울로 돌아와 딸의 눈을 검사해 보니 실명 위험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전 장관이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것은 이때였다.

그는 "세례를 받을 생각을 하고 나서 욥,예레미아의 애가,하박국 등의 성경을 읽으면서 종교는 절대 합리성으로는 설명하거나 분석할 수 없는 영성의 세계임을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70대에 세례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내 안에 묻혀 있던 영성이 이제 나오는 것"이라며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며,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한다"고 했다. 그래서 종교적 현상은 체험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이 바로 영성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지성과 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성과 이성이 사라지고 영성만 남으면 도에 넘치는 열광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탄생한다는 것.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며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가고,지적 갈등을 느끼면 도서관에 가듯이 영혼이 목마를 땐 교회에 간다는 얘기다.

그는 또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며 "영성은 지성과의 피나는 결투 끝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례받은 교인이지만 자신 역시 아직 영성의 세계로 가는 문턱에 있으며 세속의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아직 (영성의)문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고도 했다.

이 전 장관은 교토에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쓸 때부터 세례를 받을 때까지 자신의 일상을 수상 형식으로 기록하고,딸의 간증록도 함께 실었다.

신앙과 영성을 주제로 한 책이지만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떠나 교양서로 읽어도 좋을 정도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