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평택은 아수라장이었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쌍용자동차 노조의 불법 공장 점거로 하늘은 시커먼 폐타이어 연기로 뒤덮였고,지역 경제는 파탄을 맞았다. 노조 간부들은 조합원들을 쇠파이프와 볼트 새총으로 무장시킨 채 장기 파업을 선동했지만 쌍용차의 장기간 생산공백에 따른 씻기 힘든 상처만을 남겼다.

고(高)비용 구조에 따른 적자 누적으로 워크아웃을 추진 중인 금호타이어 노조가 구조조정에 반발,파업을 결의하면서 회생을 점치기 힘든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개입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전철을 되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호타이어 노조가 지난 9일 1199명에 대한 구조조정안에 반발,강행한 파업찬반 투표에서 조합원의 72.34%가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다. 회생의 키를 쥔 채권단은 그러나 쌍용차 사태 때와 다름없이 '구조조정 등 희생 없는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노조 '오판' 부르는 정치권

최근 금호타이어 회생을 둘러싼 진통은 많은 점에서 지난해 여름 쌍용차 사태를 닮아가고 있다. 정치적인 상황까지도 비슷하다. 쌍용차 노조가 사측의 2646명 구조조정안에 맞서 공장을 불법으로 점거한 5월,보궐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쌍용차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앞다퉈 내걸었다.

민주노총과 좌파단체들까지 대거 끼어들면서 상황은 더욱 꼬였다. 쌍용차 관계자는 "정치권과 외부세력의 중구난방식 개입에 현혹된 일부 노조원들은 쌍용차가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맹신을 갖게 됐었다"고 회고했다.

금호타이어 사태는 6 · 2 지방 선거를 앞둔 광주지역 정가에서도 논란의 핵심이다. 광주시장 예비 후보들마다 '제 논의 물대기' 식으로 금호타이어 문제에 대한 논평을 남발하고 있다. 야당의 한 예비후보는 "광주시민 앞에서 금호타이어의 진실을 밝히고 지역사회 공론화를 위해 공개 토론을 갖자"고 제안하며 정치 논쟁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회생 기회 차버리나

77일간의 상처 이후 쌍용차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이날 쌍용차 부품업체,판매대리점협의회,서비스 네트워크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쌍용차 노 · 사 · 민 · 정 협의회는 긴급 자금 지원을 청원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갖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방문했다. 새로 선출된 노조위원장도 경영진과 함께 문턱이 닳도록 은행을 드나들고 있지만 채권단의 지갑은 쉽사리 열리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금호타이어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이다. 채권단은 워크아웃 기간 중 쟁의행위 금지와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 동의를 자금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파업 결의로 긴급자금 1000억원 지원은 물 건너간 셈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노조가 오는 15일 조정기간까지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파업을 강행할 경우 법정관리나 공장폐쇄까지 검토할 것"이라며 "금호타이어도 자칫 때를 놓쳐 회생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업 결의 이후 노조는 이날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파업 일정과 행동 지침 등을 논의 중이다. 저녁께 사측과 재협상을 벌였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기본급 20% 삭감과 1199명에 대해 정리해고,도급직 전환 등 구조조정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기본급 외에 상여금 200% 삭감을 받아들이면 구조조정안을 철회하겠다고 했으나 노조는 즉각 거부했다. 노조는 기본급 10% 삭감,상여금 100% 반납,2010~2012년 정년 예정자 311명에 대한 단계적 외주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