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86) 세왕주조, 81년된 막걸리 名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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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가지 검사하며 옛 맛 그대로"
1929년 집 대여섯채 값들여 진천에 국내 첫 양조회사 설립
특수배양법으로 깔끔한 맛…막걸리 열풍타고 서울 입성
1929년 집 대여섯채 값들여 진천에 국내 첫 양조회사 설립
특수배양법으로 깔끔한 맛…막걸리 열풍타고 서울 입성
'생거진천(生居鎭川)'.'살아서 진천에 머물라'는 옛말이다. 넉넉한 인심과 풍광,풍부한 먹거리 덕에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진 충북 진천을 치켜세운 덕담이다. 그래서 그럴까. 요즘 애주가들 사이에 단골 방문 코스로 떠오른 막걸리 명가 세왕주조(대표 이규행)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도 진천이다.
1929년 설립된 세왕주조는 올해로 81년째 전통기법으로 막걸리와 약주 등 전통술을 빚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회사다. 이규행 대표(49)는 할아버지 장범씨(1961년 작고)와 아버지 재철씨(80)에 이어 1998년 가업을 물려받아 3대째 양조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한때 프랑스 햇포도주인 보졸레 누보보다 더 많이 팔리면서 세간의 관심을 얻은 '막걸리 누보(20여개 업체 연합 출품)' 중 하나가 바로 세왕주조의 덕산막걸리다.
◆전통기법 살려 옛 맛 그대로
세왕주조의 막걸리는 깔끔하고 뒤끝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대표가 개발한 '생거진천 쌀막걸리'는 이런 점을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이 대표는 "쌀과 누룩 등 주재료의 신선도와 고두밥(술원료)의 수분 함량,찌는 온도,종균실 습도,누룩의 양 등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 내려온 110개 항목의 체크리스트가 변함없는 술맛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세왕주조의 막걸리는 5일 동안 완성된다. 막걸리 발효에 필요한 백국균(효모의 일종)을 45시간 배양한 뒤 항아리에 담고,덧밥(술밥)을 다음 날 넣어준 뒤 이틀 동안 숙성시킨다.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한때 기계로 이 과정을 재현한 적이 있지만,결국 '손맛'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날 그날 날씨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균의 활동성을 제어하려면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보다 섬세한 감각으로 균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의 손길이 더 효과적이었다.
'특수균배양법'도 또 다른 비법이다. 이 대표는 "우리 술에 쓰는 균은 사람으로 치면 해병대나 공수부대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며 "미생물도 험한 풍파를 겪고,생존경쟁을 거쳐 자란 놈이 훌륭한 발효 성과를 낸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특수배양법은 일부러 문서나 특허로 남기지 않았다. 세왕만의 비기(泌技)이기 때문이다.
◆덕산 양조장의 비밀
세왕주조 80년 역사와 궤를 같이한 양조장 건물도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1929년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해 지었다는 이 건물은 2003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물 자체가 '살아있는 공장'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백두산 삼나무로 지은 양조장은 문이 서쪽으로 나 있어 바람이 잘 통한다. 앞에 심은 측백나무는 열기를 막아 한여름에도 건물을 식혀준다. 특히 측백나무가 뿜어내는 향은 해충과 유해균의 번식을 막아주는 천연방부제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 대표는 "건물 벽과 천장,주변에 피어있는 곰팡이도 함부로 건들지 않는다"며 "건물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여러 미생물들과 술 빚는 누룩균이 균형 잡힌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손상되면 술맛이 확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 부친의 '절대미각'은 세왕주조의 든든한 안전장치다. 그는 매일 점심 저녁 두 번씩 갓 나온 막걸리를 반주 삼아 식사를 한다. 이때 "맛이 이상하다"는 말이 나오면 회사에 비상이 걸린다. 제조공정 어딘가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지역에 봉사하라"
해공 신익희 선생의 선거참모를 지냈던 창업주 이장범씨는 사회개혁에 관심이 많아 물려받은 돈을 정치판에 쏟아붓기 일쑤였다. 세왕주조를 세운 것도 다시 재산을 일궈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일제가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 양조장 사업을 장려하자 할아버지는 곧바로 처갓집에서 1800원을 빌려 덕산양조장을 지었다고 해요. 이왕 하려면 충북 최고의 양조장을 짓겠다며 당시로서는 집 대여섯 채 값에 달하는 돈을 투자했죠.하지만 할아버지는 성냥 한 갑을 갖고 3년을 쓸 정도로 안 먹고 안 쓰면서 빚을 다 갚았다고 합니다. "(이규행 대표)
이렇게 세워진 세왕주조는 초등학교 운동회나 경로잔치 등 각종 마을행사에 단골 초대손님이 됐다. 웬만한 행사에는 돈을 받지 않고 막걸리 10짝(10말)을 공급하고 돼지도 잡곤했다.
2대인 재철씨가 가업을 이은 때는 1961년.서울대 수의학과를 나온 그는 수의사 일을 하는 동시에 양조장 일을 도우면서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 정부가 막걸리를 제외한 약주 생산 업체 수를 1사1도로 통제하자 약주 공장을 따로 짓고 업계에 뛰어들어 사세를 두 배 이상으로 키웠다.
◆새 약주 개발 '심혈'
1998년 가업을 이은 이 대표는 큰 돈을 벌지 못했다. 막걸리를 판 돈의 대부분을 신제품 개발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시제품 시음을 할 때면 꼬박꼬박 예닐곱 번씩 필름이 끊어지곤 했어요. 천연탄산이 들어있는 탓에 워낙 장내 흡수가 빨라서 그렇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선대에는 없었던 흑미와인 등 35가지의 새 제품을 갖게 됐지만요. 허허."(이규행 대표)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알코올 도수 7도의 반살균 막걸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달짝지근한 맛과 톡 쏘는 맛이 어우러진 이 막걸리는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자 상황은 반전됐다. 막걸리가 초산발효를 일으키면서 상해 무더기 반품이 들어온 것.그는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지만 후회는 없다"며 "실패를 경험으로 더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이 대표의 관심은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이를 위해 조만간 생산시설도 지금의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첫 번째 타깃인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옌지( 延吉) 지역에 2만5000㎡ 크기의 공장 터도 봐뒀다. 그는 "앞으로 2개월 정도면 공장 허가가 떨어질 것으로 본다"며 "완제품 외에도 양조기술 자문과 종균 수출 등을 통해 국산 전통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진천(충북)=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협찬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진흥공단
1929년 설립된 세왕주조는 올해로 81년째 전통기법으로 막걸리와 약주 등 전통술을 빚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회사다. 이규행 대표(49)는 할아버지 장범씨(1961년 작고)와 아버지 재철씨(80)에 이어 1998년 가업을 물려받아 3대째 양조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한때 프랑스 햇포도주인 보졸레 누보보다 더 많이 팔리면서 세간의 관심을 얻은 '막걸리 누보(20여개 업체 연합 출품)' 중 하나가 바로 세왕주조의 덕산막걸리다.
◆전통기법 살려 옛 맛 그대로
세왕주조의 막걸리는 깔끔하고 뒤끝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대표가 개발한 '생거진천 쌀막걸리'는 이런 점을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이 대표는 "쌀과 누룩 등 주재료의 신선도와 고두밥(술원료)의 수분 함량,찌는 온도,종균실 습도,누룩의 양 등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 내려온 110개 항목의 체크리스트가 변함없는 술맛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세왕주조의 막걸리는 5일 동안 완성된다. 막걸리 발효에 필요한 백국균(효모의 일종)을 45시간 배양한 뒤 항아리에 담고,덧밥(술밥)을 다음 날 넣어준 뒤 이틀 동안 숙성시킨다.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한때 기계로 이 과정을 재현한 적이 있지만,결국 '손맛'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날 그날 날씨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균의 활동성을 제어하려면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보다 섬세한 감각으로 균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의 손길이 더 효과적이었다.
'특수균배양법'도 또 다른 비법이다. 이 대표는 "우리 술에 쓰는 균은 사람으로 치면 해병대나 공수부대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며 "미생물도 험한 풍파를 겪고,생존경쟁을 거쳐 자란 놈이 훌륭한 발효 성과를 낸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특수배양법은 일부러 문서나 특허로 남기지 않았다. 세왕만의 비기(泌技)이기 때문이다.
◆덕산 양조장의 비밀
세왕주조 80년 역사와 궤를 같이한 양조장 건물도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1929년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해 지었다는 이 건물은 2003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물 자체가 '살아있는 공장'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백두산 삼나무로 지은 양조장은 문이 서쪽으로 나 있어 바람이 잘 통한다. 앞에 심은 측백나무는 열기를 막아 한여름에도 건물을 식혀준다. 특히 측백나무가 뿜어내는 향은 해충과 유해균의 번식을 막아주는 천연방부제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 대표는 "건물 벽과 천장,주변에 피어있는 곰팡이도 함부로 건들지 않는다"며 "건물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여러 미생물들과 술 빚는 누룩균이 균형 잡힌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손상되면 술맛이 확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 부친의 '절대미각'은 세왕주조의 든든한 안전장치다. 그는 매일 점심 저녁 두 번씩 갓 나온 막걸리를 반주 삼아 식사를 한다. 이때 "맛이 이상하다"는 말이 나오면 회사에 비상이 걸린다. 제조공정 어딘가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지역에 봉사하라"
해공 신익희 선생의 선거참모를 지냈던 창업주 이장범씨는 사회개혁에 관심이 많아 물려받은 돈을 정치판에 쏟아붓기 일쑤였다. 세왕주조를 세운 것도 다시 재산을 일궈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일제가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 양조장 사업을 장려하자 할아버지는 곧바로 처갓집에서 1800원을 빌려 덕산양조장을 지었다고 해요. 이왕 하려면 충북 최고의 양조장을 짓겠다며 당시로서는 집 대여섯 채 값에 달하는 돈을 투자했죠.하지만 할아버지는 성냥 한 갑을 갖고 3년을 쓸 정도로 안 먹고 안 쓰면서 빚을 다 갚았다고 합니다. "(이규행 대표)
이렇게 세워진 세왕주조는 초등학교 운동회나 경로잔치 등 각종 마을행사에 단골 초대손님이 됐다. 웬만한 행사에는 돈을 받지 않고 막걸리 10짝(10말)을 공급하고 돼지도 잡곤했다.
2대인 재철씨가 가업을 이은 때는 1961년.서울대 수의학과를 나온 그는 수의사 일을 하는 동시에 양조장 일을 도우면서 기술을 익혔다. 그러다 정부가 막걸리를 제외한 약주 생산 업체 수를 1사1도로 통제하자 약주 공장을 따로 짓고 업계에 뛰어들어 사세를 두 배 이상으로 키웠다.
◆새 약주 개발 '심혈'
1998년 가업을 이은 이 대표는 큰 돈을 벌지 못했다. 막걸리를 판 돈의 대부분을 신제품 개발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시제품 시음을 할 때면 꼬박꼬박 예닐곱 번씩 필름이 끊어지곤 했어요. 천연탄산이 들어있는 탓에 워낙 장내 흡수가 빨라서 그렇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선대에는 없었던 흑미와인 등 35가지의 새 제품을 갖게 됐지만요. 허허."(이규행 대표)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알코올 도수 7도의 반살균 막걸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달짝지근한 맛과 톡 쏘는 맛이 어우러진 이 막걸리는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자 상황은 반전됐다. 막걸리가 초산발효를 일으키면서 상해 무더기 반품이 들어온 것.그는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지만 후회는 없다"며 "실패를 경험으로 더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이 대표의 관심은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이를 위해 조만간 생산시설도 지금의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첫 번째 타깃인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옌지( 延吉) 지역에 2만5000㎡ 크기의 공장 터도 봐뒀다. 그는 "앞으로 2개월 정도면 공장 허가가 떨어질 것으로 본다"며 "완제품 외에도 양조기술 자문과 종균 수출 등을 통해 국산 전통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진천(충북)=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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