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자금줄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해외기업들이 중국 본토에서 위안화표시 채권(일명 판다본드)을 발행할 수 있게 사실상 허용한 데 이어 기업공개(IPO) 시장도 조만간 개방할 방침이다. 상하이 증권거래소가 개설을 추진 중인 외국기업(해외 중국계기업 포함) 전용 증시인 '궈지반(國際板 · 국제판)'을 통한 상장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외환보유액 세계 1위(2조4000억달러,작년 말 기준)라는 막대한 자금력을 배경으로 과거 세계 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다 쓰기만 하던 수요자에서 공급자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위안화를 미 달러화처럼 세계 통화로 만들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관측이다.

◆HSBC 등 5개사 상장 준비

중국의 '궈지반' 개설 의지는 강하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 국회 격)에서도 화두가 됐을 정도다.

겅량 상하이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이 증시의 상장 규정과 거래 기준에 대한 초안을 이미 마련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정 상하이 시장도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기업이 상장하는 궈지반이 반드시 마련될 것이며 조속한 출범을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도 속속 상장의사를 밝히고 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올해 5개 외국기업이 상하이 궈지반에 상장해 1000억위안(약 16조5000억원)을 조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민간연구소인 중국 금융연구소의 조용찬 수석연구원은 "HSBC 폭스바겐 코카콜라 지멘스 뉴욕증권거래소 로이터통신 등이 상장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호주 3위 철광석업체인 포트스쿠메탈과 GE 발레 등도 상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외국기업들의 적극적인 행보는 상하이증시의 지난해 IPO 규모가 190억달러로 전 세계에서 홍콩(245억달러)에 이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오승훈 대신증권 글로벌리서치팀장은 "궈지반은 외국기업들엔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 비즈니스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중국 측엔 넘쳐나는 유동성을 외국기업 IPO에 투입함으로써 위안화 절상 압력을 낮춰주는 윈윈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판다본드' 1호는 미쓰비시UFJ 유력



중국 본토에서 판다본드 발행 1호 외국기업은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UFJ가 유력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쓰비시UFJ가 지난해 12월 중국 당국으로부터 판다본드 발행 인가를 받았다며 이를 통해 중장기 대출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도 35억위안 규모의 판다본드 발행을 적극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국에 있는 외국계 은행들은 주로 은행 간 콜거래를 통해 위안화를 조달하기 때문에 조달 금리가 대부분 예금금리보다 높아 판다본드 허용을 반기고 있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중국담당 연구위원은 "중국 비즈니스 확대로 위안화 수요가 늘고 있는 다국적 금융회사와 기업 입장에선 판다본드가 환전 비용 없이 위안화를 조달할 수 있어 미국 양키본드와 일본 사무라이본드 등에 이어 새 자금조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회사채시장 육성에 힘을 쏟고 있는 점도 판다본드 활성화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인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본토(홍콩 제외)에서 발행된 투자적격 회사채 규모는 1991억달러로 2008년(652억달러)의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중국의 채권시장과 IPO시장 개방이 본격화되면 한국 기업들의 참여도 잇따를 전망이다.

박현국 삼성증권 홍콩법인장은 "지금은 국내기업들이 중국 사업확대에 필요한 자금을 홍콩에서 마련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중국 본토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려는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광진/장경영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