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독일은 전격전을 전개,5주 만에 파리를 함락시키고 프랑스를 차지했다. 그러자 서유럽 진영은 영국을 중심으로 즉각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프랑스 원정에 나선 영국군은 1940년 5월 연합군은 프랑스 덩케르크항에 고립됐고,영국 육군 정규군의 핵심인 25만명이 협공포위 상태에 빠졌다. 독일군은 포위망을 좁혀왔고,히틀러는 기갑부대를 앞세워 다음 달 4일 이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당시 영국군은 어떻게 됐을까. 영국군은 어선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선박 850척을 모아 33만8000여명의 연합군을 영국 본토로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적의 포위망을 뚫고 연합군을 구한 주역은 당시 제2군단장이던 앨런 브룩 장군이었다.

그는 자신의 제2군단은 물론 후퇴하는 영국군의 노출된 동쪽 측면을 통합 지휘해 부하들을 사지에서 구했다. 그는 정치적 판단 때문에 군사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본국의 모순된 훈령을 거부한 채 파멸 직전에 놓인 장병들을 본국으로 철수시켰다. 그는 영국으로 탈출한 뒤 잔류 병력을 철수시키기 위해 다시 프랑스로 건너갔을 정도로 헌신했다.

그래서 '덩케르크의 치욕' 이후 체임벌린에 이어 총리가 된 윈스턴 처칠은 브룩을 가리켜 "그만의 투철한 정신과 치밀한 판단력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난국을 냉철하게 극복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워 다이어리》는 '영국 육군참모총장의 일기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브룩의 일기를 토대로 2차대전을 재구성한 책이다.

육군참모총장으로서 2차대전을 지휘한 브룩은 전쟁 기간 내내 일기를 썼고 일기장 한 권이 채워질 때마다 집으로 보내 부인이 보관하도록 했다. 영국판 '난중일기'를 남긴 셈이다.

그의 일기 쓰기는 7년이나 이어졌고 그가 다룬 사안의 규모나 범위는 세계적인 동시에 기밀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또 그는 군인은 물론 요직에 있던 다양한 사람을 접촉했기 때문에 그의 일기에는 2차대전의 전략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책에는 전쟁의 경과와 당시의 상황,전략의 구상단계부터 계획 및 수행단계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와 그가 한 개인으로서 느꼈던 감회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또한 그의 일기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이 처칠이다.

영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처칠은 결코 적에게 굴복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또한 위기와 호기를 예견하는 통찰력,국민들이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다독이는 조정력 등 장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참을성이 없고,성미가 급한 게 흠이었다.

이런 처칠을 브룩은 잘 보좌했다. 전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처칠의 단점을 메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일기에는 당시 처칠과의 마찰,처칠에 대한 불만 등도 숨김없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브룩은 "일기에 쓴 처칠의 단점은 그가 이룩한 업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환상의 짝꿍임을 과시했다.

브룩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버나드 몽고메리,미얀마 철수를 지휘한 윌리엄 슬림과 함께 영국 국방부 앞에 동상으로 서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