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파이터'이자 '중앙은행 독립투사'였던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이번 금통위 금리결정 회의를 마지막으로 퇴임한다. 1968년 1월 한국은행에 들어와 42년2개월 근무해 '최장수 한은맨'으로 기록된 이 총재는 이달 말 임기를 마친다.

이 총재는 부총재 시절이던 2004년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당시 기준금리) 인하에 반대하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카드 사태 후유증으로 경기 부진이 우려스럽자 다른 금통위원들은 금리 인하로 대처하자고 나섰지만 이 총재는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하고서는 경제성장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사석에서 적정 금리를 공부방 온도에 곧잘 비유했다. "몸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온도보다 약간 춥게 느껴지는 곳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는 것.금리 역시 "돈을 빌려 쓰는 데 약간 부담을 느끼고 경제활동을 하는 데 약간 긴장을 갖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강조했다.

전형적인 '매파'로 분류되는 이 총재는 11일 마지막으로 주재한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연 2.0%인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현재 우리 위치가 제 궤도에 있는지 항상 점검해봐야 한다"며 "미래를 위해서는 조금씩 움직여야 하는데 이를 위한 설득과 합의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 총재의 소신 덕에 한은은 최근 3년간 중기 물가목표를 맞췄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평균 상승률을 3.3%로 묶음으로써 중기 목표를 달성했다.

한은 내부에서는 이 총재가 한은 독립투사였다는 점을 들어 역대 최고 총재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총재는 자금부 부부장 시절인 1990년 초반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 대한 특별융자를 거절했으며,기획부장 시절인 1997년에는 한은에서 금융감독원을 떼어내는 것에 반대했다. 이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은이 금융회사에 대한 독자적인 조사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 정무위원회의 반대로 향후에도 이 총재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이 총재는 그러나 미흡한 측면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융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정부와의 협력을 소홀히 해 위기 수습에 늑장 대처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모 장관은 "위기 초기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정부와 너무나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8년 8월 기준금리를 연 5.0%에서 연 5.25%로 인상한 것도 실책으로 꼽힌다. 리먼 사태로 국내에서 달러 유동성 위기가 닥친 것에서 이 총재가 자유롭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이 총재는 4년 전 취임사에서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의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으나 결과적으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8년 말께부터 공격적인 금리 인하와 적극적 자금 투입,한 · 미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위기를 조기에 수습한 것은 이 총재의 공이라는 평가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