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인숙씨(47)의 장편소설 《소현》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패국의 후계자로 수모를 곱씹어야 했던 소현세자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청나라와 명나라의 대결에서 결국 청이 승리하고,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가기까지의 2년이 배경이다.

소설 속 소현세자는 현실감각을 갖춘 명민한 인물이다. 그는 인질로 청나라에 머물면서 조선과 자신의 무기력한 처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명나라를 치는데 골몰한 청나라는 더이상 힘없는 소국 조선에는 관심도 없다.

임금이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던 과거는 조선에는 지울 수 없는 치욕이었지만,중원의 주인을 노리는 청나라에는 사소한 일이었다. 소현세자는 이를 '조선의 적은 그들(청나라)이었으나 그들의 적은 조선이 아닌' 현실에 비유한다.

약소국에 태어난 죗값을 치르는 자는 소현세자뿐만이 아니다. 종친의 여식으로 태어난 귀한 몸이었으나,난리통에 청나라에 끌려가 황제에게 바쳐졌다가 대학사의 작은부인이 된 흔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청나라에 빌붙어 잘 사는 듯한 역관 만상도 어머니와 누이가 눈앞에서 강간 · 살해당한 과거에 시달리고 있다.

작가는 소현세자의 무력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작해야 적국의 볼모로 잡혀 있는 세자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까닭으로 누구보다 먼저 알고 누구보다 먼저 판단해야만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할 수 있는 일이 생길 때까지 염원하고,또 염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염원이 간절했다. '

소설은 청나라에서 인맥을 쌓고 돌아온 아들 소현세자를 두려워한 아버지 인조가 아들을 독살했는지 아닌지 그 여부를 길게 따지지 않는다. 세자의 고민이 절정에 달했을 짧은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기에,소설은 한 인물의 비극으로 그치지 않는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자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진 자의 자리는 바닥이 아니라 바닥 아래보다 더 낮은 곳이었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으므로 그 자리가 바로 죽음이었다. 하나의 생이 그때에 끝났고,또 하나의 생이 그때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중략)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정복자의 것이었다. 또한 정복자의 세월이었다. '

첫 역사 장편에 도전한 김씨는 "쓰는 내내 소현의 고독이 내 몸속에 들어와 늘 아팠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