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11일 간접 언급한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은 원자력 분야에서 한 · 미 양국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현재 한 · 미원자력협정은 한국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재처리'를 하면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에 따라 파이로 프로세싱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플루토늄 추출 없이 사용 후 핵연료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고준위 핵폐기물을 90%가량 줄일 수 있는 데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어 재처리가 아닌,'재활용'이라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은 현재 20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며 2030년까지 18기를 더 지을 예정이다. 기존 원전에서만 연간 700t의 사용 후 핵연료가 발생한다. 방사능이 제거되기까지는 수백만년이 소요되는 고준위 폐기물이다. 핵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파이로 프로세싱에 한국이 집착하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 입장에 선뜻 동의해 주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기술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데다 사실상 재처리와 다를 바 없다는 시각에서다. 미국이 이처럼 완강하게 나오는 것은 한국에 어떤 형태로든 '재처리'를 허용할 경우 핵 비확산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을 인정해줬으니 우리도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지는 걸 사전에 차단하자는 의도다.

한국과 미국은 올해 시작될 한 · 미원자력협정(2014년 만료) 개정 협상에서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정 총리의 이날 발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을 허용토록 요구할 방침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강규형 세계원자력정상회의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와 관련, "기술의 안전성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사용 후 핵연료를 핵무기로 전용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