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와서 아파트촌 벤치에 앉아

한 조각 남아 있는 육포 안주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아 행복하다!

나도 모르겠다 불행 중 다행일지

행복감은 늘 기습적으로 밑도 끝도 없이 와서

그 순간은

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하면서

그 순간은

시간의 궁핍을 치유하는 것이다.

시간의 기나긴 고통을

잡다한 욕망이 낳은 괴로움들을

완화하는 건 어떤 순간인데

그 순간 속에는 요컨대 시간이 없다


-정현종 '행복'전문

아들 녀석이랑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난 뒤 바나나맛 우유를 마실 때 저는 행복을 느낍니다. “할머니 이리 앉으세요” 하면서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에 ‘행복좌석’을 마련하는 젊은이를 볼때도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한두 시간 산행을 한 뒤에 땀을 훔치면서 막걸리를 들이켜면 “맞아 이거야?”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번개가 치는 것처럼 찰나에서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행복은 순간에 찾아옵니다. 그때야 비로소 욕망이 낳은 괴물들을 내칠 수 있습니다.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