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은 '박치기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공격수인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 대표팀 마르코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아 퇴장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경기장을 빠져나간 지단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라커룸을 발로 찼다. 결승전이 열렸던 라이프치 축구장 측은 지단의 '비신사적인 행동'을 징계하고 파손된 라커룸을 수리하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박치기 사건'이 축구장을 명소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판단,축구장 측은 지단이 찬 부분에 금테를 두른 다음 11유로의 입장료를 받고 라커룸을 일반에 공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역사적 사건'을 직접 보고 싶어 한 축구팬들이 앞다퉈 축구장을 찾았다. 파손된 라커룸이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는 라이프치 축구장의 역발상이 빛을 본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에도 공식이 있다

신정호 LG전자 생산성연구원 개발력강화그룹 책임연구원은 한국산업기술대 주최,한국경제신문 주관으로 12일 열린 '글로벌 트리즈 컨퍼런스 2010' 이틀째 행사에서 라이프치 축구장의 사례를 트리즈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유해한 요소를 강점으로 활용하는 트리즈의 '전화위복'원칙을 적절히 응용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포스코,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주요 기업 연구진이 참여,트리즈를 활용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인 사례들을 소개했다.

트리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패턴 40가지를 뽑아 만든 방법론이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졌지만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이 이론을 신제품 개발과 원가 절감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트리즈 연구의 무게 중심이 한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게 행사 참가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삼성 LED TV의 비밀

이준영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부장은 지난해 출시한 LED(발광다이오드) TV의 문제점을 트리즈 툴을 이용해 해결한 사례를 소개했다.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TV의 광원(光源)을 형광등의 일종인 CCFL에서 LED등으로 바꾸자 TV를 오래 보면 눈이 부시는 문제가 발생했다. 며칠간의 밤샘연구 끝에 눈부심 현상의 원인을 찾아 개선했더니 이번에는 화질에 문제가 생겼다. 눈부심과 화질 사이에서 모순이 생긴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 문제를 트리즈의 '분리'라는 원칙을 통해 해결했다. 눈부심을 유발하는 부분과 화질을 높이는 부분을 분리한 것.이 부장은 "LED TV에 트리즈를 적용해 얻은 이익이 매년 2000만달러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홍욱 현대자동차 남양만 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트리즈의 '시간의 분리' 원리를 적용한 가변 압축 엔진에 대해 설명했다. 피스톤이 상하 운동을 할 때 피스톤과 엔진 내부 천장 사이 공간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게 한 제품이다. 공간이 크면 연비가,작아지면 힘이 각각 좋아진다는 점에 착안해 필요할 때마다 공간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는 것.

이 기술은 개발 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해외에서 이미 특허를 받아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현대차는 여기에도 트리즈 기법을 적용했다.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 중 일부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일부 부품을 빼고 다른 부품으로 대체하는 방법으로 특허 충돌을 막은 것.트리즈의 '자르기' 원리를 적용한 사례다.

송형석/박민제 기자 click@hankyung.com

◆트리즈=러시아 학자 겐리히 알츠슐러의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문제해결 방법론이다. 그는 1946년부터 17년 동안 러시아 특허 20만건을 분석한 뒤 다양한 분야에서 쏟아져 나온 기술의 밑바탕에 있는 아이디어 패턴이 수십 가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장 많이 활용된 아이디어 패턴 40개를 뽑아내 '트리즈(TRIZ · 창의적 문제해결 방식을 뜻하는 러시아어 약자)' 이론을 정립했다. 새로운 사물이나 프로젝트를 대할 때 40가지 원칙을 떠올리면 경쟁자들이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