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조국 근대화를 위해 총 7차례에 걸친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수립,시행했다. 1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은 5 · 16군사정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62년 시작됐다. 그러므로 내년이면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착수한 지 50년이 된다.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경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현재 우리 경제는 세계 10대 강국대열에 속해 있으며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제조업부문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삼성,LG,현대라는 이름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그동안 경제의 양적 성장만 추구한 것은 아니다. 계층 간 소득분배의 공평성은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경제성장과정에서 축적,확립한 각종 경제 · 사회제도도 국제적으로 학습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우리 제도를 전수받기 원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수요를 반영,최근 정부는 개도국 원조의 일환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우리의 개발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수립,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력에 비해 국가브랜드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 국가브랜드를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지만,일반적으로 관광이나 투자와 같은 경제적 관점에서 한 국가에 대한 외국인의 선호도를 의미한다.

이번 정부는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새롭게 출범시키는 등 국가브랜드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적 관점을 뛰어넘어 국가의 위엄이나 기품을 드러내는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상위개념은 국격(國格)이다. 국격은 간단히 말해 국가 및 그 구성원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품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단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음에도 국제적 인지도가 높지 않고,국제사회에서 우리에 대한 인식 역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이에 따라 우리의 국격은 경제력은 물론이고 국가브랜드가치에도 미달하는 수준이다.

과거 반세기 동안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력 향상에만 매진했지만,앞으로는 경제적 위상과 더불어 국격 제고에 노력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고 세계에서 존경 받는 국가로 태어나야 한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발전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향상시키려면 그동안 우리가 종교처럼 추구해왔던 경제적 효율성의 상실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요소가 뒷받침돼야 한다. 첫 번째가 경제적 성과와 기술발전으로 이뤄지는 경제적 기반이다. 둘째는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에는 국민성,사회문화적 풍요도,민주주의와 인권,역사와 전통,신뢰와 원칙,환경 및 관광자원이 포함된다. 세 번째는 국제적 위상이다. 이를 위해 국제협력 강화 및 국제규범 준수와 더불어 국제사회에 대한 적극적 기여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를 땄다. 이는 우리 스포츠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말 그대로 올림픽은 인류의 축제다. 또한 스포츠는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우리는 나라 전체가 너무 경쟁에만 몰입했다. 금메달 획득에 연연하고 공식적으로는 있지도 않은 종합순위(5위)를 내세우는 태도는 글로벌 시민의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국격을 높이려면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과 계몽,반성적 노력이 꾸준히 요구된다. 국격은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후천적으로 형성된다. 우리가 선진적 경제기반을 마련하는 데 반세기가 걸렸듯이 선진적 국격을 달성하는 데 또 다른 반세기가 걸릴지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도 긴 시간이 요구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홍기택 < 중앙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