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진단업체 임원인 김모씨 등 3명은 2006년 아파트 하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지방의 한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에 접근했다. 이들은 "소송만 내면 하자 보수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해결해 주겠다"며 입주자대표회의가 시공사와 건설공제조합을 상대로 하자보수 소송을 내도록 부추겼다. 이들은 직접 하자진단을 실시했고 변호사도 소개해줬다. 그 대가로 이들은 입주자대표회의와 변호사 양측으로부터 모두 74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후에도 이들은 다섯 차례나 소송을 부추기다 붙잡혔고,결국 지난달 대구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아파트 '하자보수' 소송이 기획소송으로 변질되고 있다. 법조 브로커나 변호사들이 새로 입주한 아파트주민들이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도록 유도하면서 법정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하자보수 소송 건수는 2004년 78건,2005년 87건,2006년 101건,2007년 167건,2008년 290건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도 400건 넘는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설업계는 이 가운데 70~80%가 기획소송인 것으로 보고 있다.

브로커 중 상당수는 아파트 하자진단을 하는 업체의 직원이다. 이들은 소송을 주선하면서 사례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챙긴다. 게다가 승소할 경우 수억원대의 보수공사 계약을 따내기도 한다. 과거 하자진단업체의 직원이었던 A씨는 "돈을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입주민대표회의를 골라 접근한 뒤 하자 소송 전문 변호사를 연결해주는 게 일반적인 기획소송 방식"이라며 "문제가 있는 아파트도 넘치고,변호사들도 넘치기 때문에 땅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브로커나 변호사들이 입주민과 건설사 간의 접촉을 막기 때문이다.

소송을 당한 한 지방건설사 사장은 "하자 문제가 생기자 입주민과 합의해서 보수를 진행해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더니 소송에 걸렸다"며 "하자보수 소송으로 너무 많은 시간과 금전적 비용을 치러서 이제 공사를 하기도 무서울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같은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하자를 판정받는 기술은 까다롭지만 일단 노하우를 쌓으면 유사한 사건을 꾸준히 수임할 수 있어서다. 변호사들은 대개 착수금으로 입주민들에게 세대당 10만~15만원을 내도록 하고 승소하면 추가로 승소금액의 10%를 받는다. 그러나 일부 변호사는 아예 소송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고 승소하면 20~30%를 받기도 한다. 하자보수 소송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는 변호사 B씨는 "현재 100단지 이상의 하자보수 소송을 맡고 있다"며 "건설사가 부실시공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승소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른 건설사들의 피해는 막대하다. 소송에서 지면 보수비용으로 많게는 수십억원을 지불해야 한다. 지방 중소형 건설업체 대표인 윤모씨 사례를 보면 지금까지 모두 여섯 차례 하자보수 소송에 피소됐다.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패소해 사건당 10억원에 가까운 돈을 물어줬다. 지난해에도 2004년 시공한 아파트가 문제가 돼 1심 법원으로부터 "2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