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지난 15일 인사를 단행하면서 정년을 4년 앞둔 만 54세 간부들을 일괄적으로 보직에서 해임시킨 뒤 교수실로 배치하던 종전의 관행을 깨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 만 54세가 된 간부는 모두 17명으로,예년 같으면 어김없이 현업에서 물러났겠지만 이번에는 4명이 현재의 보직을 유지했다. 나머지 13명도 직책은 내놓았지만 현업에 그대로 배치됐다.

이번 인사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관행 철폐(撤廢)라는 점이다. 직접적인 배경은 고령자차별금지법으로, 나이만을 기준으로 한 인사는 불법이어서 더이상 만 54세의 일괄적 후선 배치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이는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현실에서 가장 쉽고 편리한 인사 잣대였다. 지금도 은행권에선 만 55세가 되는 지점장들 중 극소수를 제외하곤 후선으로 뺀다. 금감원의 인사 변화가 이들 금융회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낙하산 인사' 비판에서 벗어나겠다는 고육지책인 면도 있다. 만 54세의 간부는 교수실로 배치된 후 금융회사의 감사로 나가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교수실이 '감사 대기반'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도 지난해에만 금감원 출신 간부 23명이 금융사 간부로 포진했다. 은행 보험 증권등 금융사 전체로 보면 감사 자리의 60% 이상을 금감원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금융사 정기 주총 때만 되면 감독당국의 낙하산 인사 관행이 도마위에 올랐지만 그동안 달라진 게 없었다.

감사 대기반의 숫자를 확 줄인 게 이번 인사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낙하산 인사관행이 사라질지는 미지수다. 감사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전문인력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고 금융회사도 금감원이라는 시어머니를 달랠 방패막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금감원 출신의 낙하산이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 보다 확실한 낙하산 인사 근절의 의지가 요구되는 이유다. 이번 인사가 쏟아지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시늉이나 일과성으로만 끝나서는 결코 안될 일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