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복장ㆍ유연한 근무제…상명하달式 의사결정 퇴조
"그룹 임직원 평균 나이를 아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
지난 1월 경기도 용인의 삼성인력개발원 창조관.신규 임원 교육장에 들어선 그룹 인사담당 중역이 돌발적으로 낸 퀴즈다. 누구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믿을 수 없는 숫자가 튀어나왔다. 32.8세였다. 지속적인 공장 자동화로 고졸 생산직 증가율이 정체를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만큼 낮은 연령이었다.
그룹 임직원 규모는 지난해 17만9000명으로 2000년에 비해 6만명 가까이 늘어났지만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의 생산직 근로자 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1만3000명 안팎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역은 입을 딱 벌리는 신규 임원들을 상대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18만명에 달하는 그룹 임직원 중 30세 이하 비중이 40%,입사 5년차 이하 비중도 40%입니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
◆여성 채용 비중 30%까지
이날 강의의 결론은 "삼성이 이렇게 젊어졌다. 이제 여러분은 내부 경영환경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젊은 인재들의 혁신과 창조정신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로 마무리됐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이 이처럼 젊어진 것은 2000년 이후 전방위로 투자를 확대하면서 대졸 신입사원과 외부 젊은 경력직 채용 규모를 대폭 늘려왔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작년까지 삼성이 뽑은 대졸 신입사원은 무려 4만500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 군복무 의무가 없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여성 직원의 채용비중이 높아진 것도 그룹 전체 연령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대졸 신입사원 중 여성비중은 매년 25~3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교육을 받았던 모 계열사 임원은 "최근 시행한 복장 및 출퇴근시간 자율화,직원 기본급 인상,장기휴가제 실시 등의 취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며 "그룹 홈페이지인 싱글의 초기 화면을 젊은 취향으로 개편하고 익명 게시판을 개설해 사내 소통기반을 확대한 것도 젊은 직원들의 잠재력과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였던 것 같다"고 평했다.
실제 지난해 말 직원들의 기본급 인상을 신호탄으로 쏟아져 나온 각종 프로그램은 기존의 상명하달식 획일적 의사결정 구조가 유연하고 탄력적인 형태로 전환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달 초 마무리된 직원 인사를 통해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자질과 능력만 있으면 자리와 권한을 내주는 '대발탁'을 단행한 것은 직원들을 더 이상 인사팀의 전통적 평가-보상 테이블에 가둬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번 인사에서 통상 8년 걸리는 '책임→수석',5년이 소요되는 '차장→부장' 기간을 2년이나 단축한 대발탁 승진자를 33명이나 배출했다.
◆이건희 전 회장 "젊은 직원들 대우해줘야"
삼성은 최근 신입사원 교육장에 모든 문서를 없앴다. 대신 교육프로그램을 심은 넷북을 일괄적으로 나눠줬다. 교육 소감이나 평가는 개인 블로그에 싣도록 하고 있다. IT문화에 친숙한 젊은 인재들의 성향을 배려하는 동시에 회사 전반의 업무 프로세스를 개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은 감성과 활력을 표방하며 대학 캠퍼스 수준의 리모델링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최고경영자들의 경우 젊은 직원들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스마트폰과 트위터,3D TV와 멀티 기기들이 글로벌 패러다임을 재편하고 있는 가운데 젊은 직원들의 감성과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현시키느냐가 핵심 고민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업무방식과 회의문화를 바꿔보기도 하지만 단시일 내 삼성의 기존 문화를 걷어내기는 힘든 여건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사장은 "트위터를 즐기는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직접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수정해주고 싶지만 아직 그 단계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솔직히 젊은이들의 감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세대차이를 느낄 때도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대 격차를 줄이기 위한 그룹 차원의 노력은 전방위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전 회장도 몇 달 전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젊은 직원들의 도전 의욕을 북돋워야 한다"며 직원들에 대한 처우와 복지수준 향상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해외 오지 주재원 자격을 개방해 신청을 받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젊은(young) 삼성'을 향한 변화의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