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화장실 변기 막혔어."

회사에 있는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근 바이러스성 장염에 걸려 밤낮 할 것 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아이가 결국 변기까지 막아 놓은 모양이다. 아픈 아이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야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워킹맘의 하루는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아이와 관련한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다 오늘 하지 못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리 아이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 공부를 빼먹으면 학교 진도 따라가기가 어려울 텐데 하는 생각에서다.

우리 회사 커플매니저 중에는 주부들이 많아 종종 티타임 중 자녀교육에 대해 열띤 토론과 정보 교류가 이뤄지곤 하는데 가끔은 나도 그 안에 낀다. 대화의 중심은 엄친아를 둔 엄마다.

대화 후엔 종종 나의 중심이 흔들리고,엄친아와 비교하며 아이에게 까칠해진다. 내 아이가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혹여 뒤처질세라 아이를 채찍질하고 안달복달한다. 부모의 눈에는 자기 아이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 역시 크게 보인다.

자식을 진정 사랑한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내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보다 남들보다 앞서고 만능일 것을 요구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한번은 아이가 "다시 태어나면 우리 집 강아지가 되고 싶어"라고 말했다. 경악하는 나에게 아이는 "조금만 예쁜 짓을 해도 칭찬 듣고 사랑 받잖아요"라고 이유를 밝혔다.

내가 아이를 출산한 건 결혼한 지 7년째인 33세 때였다. 출산 이후의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출산 직후 육아에 전념했던 3년을 제외하고,만 4년 동안 대구에 아이와 남편을 두고 서울에서 근무하며 주말부부로 지냈기 때문에 항상 아이의 유년기를 제대로 함께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 속에 살았던 내가 아닌가. 그러던 내가 이제 비로소 아이와 함께 있을 시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어미가 되어 자식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여느 때보다 육아를 위해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지만,과연 과거보다 애정을 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이의 본질에 감사하며 올바른 부모상을 확립시켜 주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상대평가에 몰입한 나머지 끈끈한 관계를 훼손하고 있다. 한 인간으로 아이에게 삶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부모의 사랑,믿음 같은 소중한 것을 먼저 주어야 하는데,간혹 이 순서가 뒤바뀐다.

되돌아보면 스스로도 내가 부끄럽고 모자라다고 여겨질 때조차 나의 부모는 나를 완전히 믿어주었다. 부모의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노력했고,지금 생각해보면 그 믿음이 날 키웠다.

"아이가 변기를 다 막아놨어요. " 도우미 아주머니의 지청구가 오늘따라 강력하다.

김혜정 듀오정보 대표 hjkim@duo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