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창업한 것은 대학 졸업 후 4년간의 중소기업 영업사원 생활을 거친 뒤인 나이 29세 때였다. 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 옮기고 남은 돈 4000만원으로 몸담았던 회사의 의기투합한 직원 6명과 함께 서울 변두리에 사무실을 연 것이 1991년,만들기로 한 제품은 자신이 팔던 무선호출기(삐삐)였다.

당시 무선호출기 인기를 타고 사업은 연평균 매출성장률이 50%에 이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1995년에는 잘나가던 무선호출기를 버리고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면서 다시 도약을 거듭한다. 2001년 당시 국내 3위 휴대폰업체로 적자에 허덕이던 현대큐리텔을 인수해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더니,2005년 4위 업체인 SK텔레텍까지 합병함으로써 세계 7위의 휴대폰 제조업체로까지 뛰어올랐다. 창업 15년 만에 이뤄낸 연 매출 3조2000억원,종업원 수 4500명이라는 드라마틱한 성장은 벤처 신화의 대명사이자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희망이었다.

팬택과 그 창업주 박병엽 부회장의 얘기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내닫던 팬택은 그러나 2006년 말 생사의 막다른 길로 몰리고,결국 퇴출 직전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전락한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방만한 경영이 불러온 과도한 차입,여기에 실적 악화가 겹쳐 유동성 위기로 이어지는 몰락의 과정은 팬택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때는 세계 휴대폰시장이 기술보다는 마케팅에 강점을 갖는 글로벌 기업 위주의 승자독식(勝者獨食) 시장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시기였다. 브랜드나 규모가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은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게 됐고,더구나 휴대폰 구매 패턴이 기능보다는 패션 중심으로 옮겨가는 트렌드를 놓친 것이 결정적인 실패 요인이었다.

결국 회사가 망가지자 박 부회장은 대주주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4000억원대에 달했던 주식과 개인 재산을 내놓았고 채권단은 그에게 경영을 다시 맡겼다. 그와 임직원들은 지난 3년 동안 휴일도 없이 땀방울을 쏟았다. 팬택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2007년 3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10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이 그 성과다. 그러자 채권단은 그에게 회사를 되찾을 기회를 준다. 최근 주주총회에서 전체 주식의 10%에 대한 스톡옵션을 부여한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팬택의 성공적인 재기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앞으로 갈 길 또한 험난하기 짝이 없다. 요즘 IT(정보기술)업계는 '졸면 죽는다'고 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기술트렌드와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세계 휴대폰시장도 글로벌 기업 간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양상이다. 이미 국내외 수많은 군소업체들이 명멸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거대기업들까지 순식간에 판도가 바뀌는 변혁의 시대다. 당장 모바일 OS(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온갖 종류의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휴대폰시장의 새로운 게임 룰을 만들면서 신규 진입업체인 애플과 구글이 돌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혁신에 남보다 앞선 추격자로서의 입지를 굳히지 못하거나,또 다른 혁신 그 자체를 선도할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팬택의 앞날을 결코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택이 보란 듯이 되살아나 패자부활(敗者復活)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예전 IT 붐을 타고 창업해 코스닥 상장으로 엄청난 부(富)를 챙긴 뒤 회사를 팔아 넘기고 '먹튀'하거나,횡령 분식회계 등 부도덕한 행태로 기업을 망친 비윤리적 벤처기업가들이 물 흐려놓은 우리 '벤처 생태계' 회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회사가 망해가는데도 대주주 자신만 살 길을 찾아 모럴해저드를 일삼는 수많은 좀비(zombie)기업들에 교훈적인 모범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