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더라도 회사는 건져내고 죽어야죠."

부도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2004년.스포츠 용품 브랜드 르까프로 잘 알려진 화승그룹의 고영립 회장(60)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겨드랑이 밑에 혹이 잡혀 병원에 갔더니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라는 진단이 나온 것.3개월밖에 못 산다는 의사 말에 절망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1998년 부도가 난 회사를 각고의 노력 끝에 정상화시키고 있던 터였다.

좌절할 시간조차 없다는 생각에 바로 수술을 받았다. 독한 마음으로 한 달반의 집중 치료를 거친 뒤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고 회장은 "화의절차에 들어가 있는 회사를 두고 도저히 아플 수가 없었다"며 "회사는 살리고 죽는다는 생각에 통원치료를 받으며 일에 몰두하다 보니 건강도 좋아지고 회사도 살아났다"고 말했다.

병마에도 야근을 불사한 고 회장의 열정 덕분에 화승은 2005년 법원의 화의 조기 종결 결정을 받고 정상화됐다. 그후로 5년.화승은 부도 당시 84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지난해 약 2조7000억원으로 3배 넘게 끌어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신발 제조업체에서 스포츠 패션브랜드,자동차 부품,정밀화학,무역 4개 사업 분야에 22개 계열사를 보유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고 회장은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엄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열린 '제37회 상공인의 날' 기념식에서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0여년간의 구조조정 끝에 부도났던 회사를 훌륭하게 되살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화승그룹의 섬유 관련 계열사인 화승 T&C 대표를 맡고 있던 1999년,구조조정의 책임을 지고 ㈜화승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후 기업의 핵심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화승과 ㈜화승상사를 합병했고 1200명이던 직원을 300명까지 줄이는 격렬한 정리해고도 실시했다. 제지,전자,레저 등 주력분야가 아닌 6개 분야 사업도 깨끗이 정리했다. 고 회장은 "취임 직후 전 재산인 10억원 상당의 제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회사 자금을 빌리기도 했다"며 "회사 살리기에 앞장서자 직원들도 잘 따라와 줘 지금의 튼튼한 회사로 거듭났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도 금탑훈장을 받았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현대 · 기아차가 글로벌 5위로 도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그는 기아차 해외영업본부 부사장,현대차 해외영업본부 사장,현대차 기획조정실 사장 등을 잇따라 맡으면서 글로벌 경영현장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했다는 평이다. 지난해 국내 업체 최초로 등장한 에쿠스 리무진 방탄차 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은탑산업훈장은 외환위기 이후 경영환경 선진화를 위해 힘쓴 윤영각 삼정 KPMG그룹 회장과 창사 이래 50년간 무파업 사업장을 운영하며 기술개발에 앞장선 노영인 동양시멘트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동탑산업훈장은 마평수 현대단조 대표와 김상옥 유양디앤유 대표가 받았다. 총 238명의 기업인이 상을 받았다.

박민제/박동휘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