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잔혹하다면서 침묵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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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씨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출간
'세상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
소설가 김이설씨(35 · 사진)의 첫 번째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문학과지성사)은 이 자조섞인 통찰의 해설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제목처럼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잔인하고 참혹해서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일들을 겪어낸다. 신음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고도 온갖 고통을 의연하게 버텨내는 이들은 꼭 괴로움을 '겪어내기' 위해 태어나서 살아가는 존재들 같다.
<막>의 주인공인 서른다섯 단역 여배우는 극단 팀장의 알선으로 도우미 아르바이트까지 한다. 그래도 그는 '사는 게 무대 위에서
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며 애써 자신을 위로해본다.
<엄마들>에서 돈 때문에 대리모 노릇을 하는 여대생은 이렇게 읊조린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러니 공평하다. 공평하지 못한 건 그저 운명뿐이지 않은가. '
이들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겠다고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나름대로 세상의 이치를 훤하게 꿰뚫고 나름대로 적응한 덕분이다. <열세 살>의 노숙자 소녀는 정체 모를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지만,몸을 허락할 때마다 5000원은 꼭 받는다. <순애보>에서 바람난 친엄마는 딸을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리고 도망간다. 아직 초경도 치르기 전인 어린 소녀는 아버지뻘 되는 트럭 운전사에게 추행당하고 몸을 의탁하게 되지만 별 저항도 않는다. '선의도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차가운 현실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캄캄한 삶이지만,놀랍게도 그 내부에서는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맴돈다. <환상통>에서 임신도 해보기 전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처지인 여자에게 남편은 "살려고 아픈 거야.살기 위해 아파야 해.그러니 이겨"라고 말한다. 수술이 끝난 후 여자는 생리 전 습관대로 솟구치는 식욕을 다시 느낀다.
김씨는 '작가의 말'을 통해 "제목은 원래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었다"면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냐는 물음에 스스로 찾은 답"이라고 밝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소설가 김이설씨(35 · 사진)의 첫 번째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문학과지성사)은 이 자조섞인 통찰의 해설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제목처럼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잔인하고 참혹해서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일들을 겪어낸다. 신음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고도 온갖 고통을 의연하게 버텨내는 이들은 꼭 괴로움을 '겪어내기' 위해 태어나서 살아가는 존재들 같다.
<막>의 주인공인 서른다섯 단역 여배우는 극단 팀장의 알선으로 도우미 아르바이트까지 한다. 그래도 그는 '사는 게 무대 위에서
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며 애써 자신을 위로해본다.
<엄마들>에서 돈 때문에 대리모 노릇을 하는 여대생은 이렇게 읊조린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러니 공평하다. 공평하지 못한 건 그저 운명뿐이지 않은가. '
이들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겠다고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나름대로 세상의 이치를 훤하게 꿰뚫고 나름대로 적응한 덕분이다. <열세 살>의 노숙자 소녀는 정체 모를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지만,몸을 허락할 때마다 5000원은 꼭 받는다. <순애보>에서 바람난 친엄마는 딸을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리고 도망간다. 아직 초경도 치르기 전인 어린 소녀는 아버지뻘 되는 트럭 운전사에게 추행당하고 몸을 의탁하게 되지만 별 저항도 않는다. '선의도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차가운 현실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캄캄한 삶이지만,놀랍게도 그 내부에서는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맴돈다. <환상통>에서 임신도 해보기 전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처지인 여자에게 남편은 "살려고 아픈 거야.살기 위해 아파야 해.그러니 이겨"라고 말한다. 수술이 끝난 후 여자는 생리 전 습관대로 솟구치는 식욕을 다시 느낀다.
김씨는 '작가의 말'을 통해 "제목은 원래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었다"면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냐는 물음에 스스로 찾은 답"이라고 밝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