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아파트 '투자불패' 이젠 끝?…도곡ㆍ방배 등 매물 우르르
#사례1.경기도 용인시의 전원주택에 사는 60대 김모씨(자영업,2주택자)는 석달 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228㎡형(이하 공급면적 기준)을 28억원에 내놓았다.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대형 아파트 가격 상승도 앞으로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해서다. 집이 팔리면 고수익 금융상품에 투자할 생각이다.

#사례2.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에 사는 50대 최모씨(회계사,2주택자)는 작년 말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155㎡형을 12억원에 팔았다. 13억원 이상은 받으려 했으나 부동산 경기가 심상찮아 1억원은 포기했다. 아직 투자대상을 찾진 못했지만 큰 아파트는 다시 구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고가(高價) 대형 아파트를 정리하는 다주택자들이 늘고 있다.

17일 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 및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 대형 아파트의 투자가치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서울 강남권에서 150㎡(50평) 이상,15억~30억원대 아파트 매물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고가 대형 아파트를 최고 투자상품으로 인식하던 '부자'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강남구 도곡동 대호공인의 김영기 중개사는 "도곡삼성래미안에서 가장 큰 157㎡형 350채 가운데 20채가 매물로 나와 있다"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꺾였는지 평소보다 30% 가량 매물이 늘어났고 보유자도 적극적으로 팔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매수를 원하는 사람들은 호가보다 수 억원 이상 낮은 15억원 이하의 매물을 찾고 있어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 양지공인의 이덕원 중개사는 "다주택자는 올해 말까지 집을 처분해야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는데 강남지역 곳곳에서 양도세를 줄이려는 매물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를 처분한 자금으로 금융상품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국민은행 명동PB센터 심우성 팀장은 "연간 수익률이 10~15%대인 주가연계증권(ELS)과 5.5%대인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등에 분산투자하면 안정적인 수익원을 만들 수 있다"며 "아파트를 팔아 이런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어떻겠느냐는 문의가 요즘들어 부쩍 증가했다"고 말했다.

1주택 보유자 가운데서도 주택 크기를 줄이는 '홈 다운사이징'이 나타나면서 대형 아파트 '왕따'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서초구 방배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방배동 198㎡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같은 방배동 안에서 150㎡ 안팎의 아파트로 이사가려고 집을 16억원에 내놓았다"며 "남는 돈을 금융상품에 투자하겠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은 "1~2인 가구가 늘어나고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실속 소비와 함께 주택 다운사이징이 나타나고 있다"며 대형 아파트 처분 원인을 짚었다. 박합수 국민은행 PB사업본부 부동산팀장은 "3년 전만 해도 중대형 아파트는 없어서 못샀지만 지금은 가격이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보편화됐다"며 "경기침체 지속으로 중대형 아파트의 환금성이 크게 떨어진 것도 갖고 있겠다는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형 아파트들은 실제 수요자들의 관심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신규 분양시장의 청약 경쟁률은 물론 주택규모별 집값 변동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용 60㎡ 이하 소형 아파트는 2008년 2월 3.3㎡당 1418만원에서 지난 2월 1573만원으로 10.9% 상승했다. 전용 60~85 ㎡ 이하는 같은 기간 1560만원에서 1646만원으로 5.5% 올랐다. 반면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는 2288만원에서 2260만원으로 1.2% 떨어졌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