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생명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첫 거래를 시작한 17일 오전.우량 생보사로 거듭난 대한생명이 단숨에 증시의 테마주로 떠올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서울 장교동 본사 27층 회장실에서 주식거래 상황을 보고받으며 남다른 감회를 떠올렸다.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라며 계열사 사장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수를 결단했던 김 회장이었다. 2002년 말 대한생명 인수에 성공한 뒤 한화석유화학 등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모두 던지고 2년여간 경영 정상화에만 매달렸다. 마침내 대한생명의 경영 정상화와 상장을 8년 만에 마무리하고 공적 자금까지 투입됐던 부실 금융회사를 번듯하게 바꿔 시장에 되돌려 놨다.

1981년 부친 고(故) 김종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29세의 나이에 한국화약그룹 회장에 오른 지 30여년.부친에게서 물려받은 화약에서 석유화학 등 제조업,유통 · 레저,금융으로 영역을 확장해 탄탄한 3각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비로소 제2의 창업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뚝심 경영'의 힘

대한생명 상장은 2002년 인수 직후 불거진 컨소시엄 파트너 맥커리생명과의 이면계약 시비,예금보험공사와의 갈등 등 과거의 논란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상징적인 일이다. 검찰 수사와 법정 소송 등 우여곡절 속에서 대한생명을 지켜냈고 또 초우량 보험사로 변신시켰기 때문이다. 부실 투성이였던 대한생명을 경영 정상화로 이끌고 상장까지 이뤄낸 배경에는 김 회장 특유의 뚝심 경영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김 회장은 대한생명 2차 입찰신청 마감일이었던 1999년 6월7일 손에 입찰제안서를 담은 두툼한 봉투를 직접 들고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사무실로 찾아갔다. 대한생명 인수 의지는 그만큼 확고했다.

인수 당시 대한생명은 대주주의 전횡과 계열사에 대한 부실 대출 등으로 누적 결손금만 2조2906억원에 달했다. 자칫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시장에서는 부실 금융사 인수로 한화그룹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보험사의 핵심은 영업조직이며,한화가 신뢰받는 대주주로서 중심을 잡아주면 대한생명 영업조직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수자격 논란 '정면돌파'

김 회장은 대한생명을 인수한 뒤 보험사의 경쟁력인 영업조직의 동요를 막기 위해 일선 영업현장 설계사와 임직원을 직접 찾아나섰다. '얼음장 같은 카리스마'로 통하는 김 회장이 2003년 5월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대한생명 연도상 시상식에서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애창곡을 불렀던 모습은 아직도 직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물론 경영 정상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인수 자격 논란은 2008년까지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다.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호주 맥커리생명으로부터 대한생명 지분 3.5%를 565억원에 재매입,이면계약 의혹을 받아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예금보험공사는 2006년 7월 한화와 맥커리생명의 이면계약이 인수 계약 무효 또는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며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ICC가 2008년 8월 한화 손을 들어주면서 인수자격 논란은 마침표를 찍었다.

◆도전은 계속된다

지난 8년간 대한생명의 변신은 눈부시다. 2002년 말 29조598억원이던 자산 규모는 작년 말 56조5170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매출도 같은 기간 11조3023억원에서 13조7093억원으로 21.3% 뛰었다.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재는 지표도 마찬가지다. 5862억원이던 자기자본은 4조1303억원으로 무려 604% 늘어났고 지급여력비율도 95.6%에서 228.1%로 대폭 개선됐다. 대한생명을 중심으로 한화손해보험 한화증권 한화투신운용 한화기술금융 등 5개 금융 계열사의 작년 매출액은 총 18조1000억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33조54억원)의 54.8%를 차지했다.

대한생명 상장은 김 회장에게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다. 신주발행금액 1조3000억원 중 8000억원을 국내는 물론 베트남 중국 인도 등 해외 영업조직 확대에 투입,글로벌 금융사로 탈바꿈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상장 차익으로 기대할 수 있는 1조5000억~2조원의 현금 실탄은 태양광 바이오 친환경 등 미래 성장사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올해를 '해외시장 개척 및 신사업 발굴의 원년'으로 선언한 김 회장은 연초부터 해외를 돌며 태양광 관련 업체들을 접촉하는 등 신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

장일형 한화 홍보담당 부사장은 "대한생명 상장은 제조업,유통 · 레저,금융의 3각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을 완성하는 계기"라며 "증시 상장을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