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된 아파트의 단지 내 상가가 조합원 간 내분 때문에 통째로 경매에 나오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동부지법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5563가구 · 옛 잠실주공 2단지)의 단지 내 상가에 대한 시공사들의 임의경매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17일 밝혔다. 단지 내 상가 공사를 담당했던 삼성물산 등 4개 건설사는 입주 후 1년반이 지나도록 800억여원의 공사대금을 받지못하자 경매를 통해 공사대금을 회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고,법원은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판단해 경매를 허가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아파트 조합원과 상가 조합원 간의 뿌리깊은 갈등 때문이다. 갈등은 1998년 이 아파트의 재건축이 추진될 때부터 표면화됐다. 서울시가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상가까지 포함하도록 하면서 당시 아파트 조합과 상가 조합은 대외적으로는 아파트 조합이 사업주체가 되도록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각자 재건축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상가 조합 측이 상가 부지 면적을 기존 부지(3517㎡)에다 아파트 조합 부지(3504㎡)를 보태 더 넓혀달라고 요구했다. 아파트 조합장은 이를 받아들여 부지를 ㎡당 908만원(평당 3000만원)에 상가 조합에 매각했다.

그러나 상가 분양 수익이 11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자 아파트 조합 측의 태도가 바뀌었다. 상가 분양 수익을 나누지 않으면 분양승인을 해줄 수 없다고 나왔다. 비록 실질적으로는 각자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형식적인 사업주체는 아파트 조합이어서 아파트 조합의 승인이 없으면 분양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상가 조합 측이 이를 거부했고 사건은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다. 대법원까지 가는 지루한 공방 끝에 상가 측이 승리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이번에는 4개 시공사가 상가 건물에 유치권을 행사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불거졌다. 시공사들이 상가 건물 점유를 통해 상가공사대금(400억원)뿐만 아니라 아파트 부분에 대한 일부 공사대금(230억원)과 연체이자(190억원)도 회수하려고 나섰다. 시공사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건물에는 주민들이 입주해 점유할 수 없어 상가 건물에 유치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가 측은 순수 상가공사대금 이외의 돈은 아파트 조합 측에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파트 조합 측은 돈을 줄 마음이 없었다. 시공사 측은 이대로 가다간 누구한테도 공사비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 경매를 신청했다. 조병길 상가조합장은 "건설사가 아파트 조합에서 대금을 받아야 하는데 애꿎은 상가주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는 상가 소유주들이 입을 가능성이 높다. 낙찰이 이뤄지면 상가 주인들은 소유권을 잃게 된다. 시공사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광장의 장찬익 변호사는 "입찰기일을 정하는 데 시간이 걸려 6개월 후쯤 입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규모가 큰 재건축 사업장에서 유치권 경매가 시행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리센츠에는 주민들이 2008년 7월부터 입주했지만 상가는 시공사들의 유치권 행사로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채 텅 비어 있다. 닫힌 철제문에는 '당 건물은 미수공사대금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담배 하나를 사기 위해 길 건너 다른 아파트 단지 상가로 가고 있다. 아파트 조합 측은 "법원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제기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