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박사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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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에 '박사'란 학위가 박혀 있으면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아무리 학력인플레 시대라지만 어떤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뤘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독일에선 명함뿐 아니라 집앞 문패에도 '박사'를 명기한다고 한다.
박사(博士)란 말이 쓰인 것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기원전 221~206년 중국 진(秦)나라 때 학문을 담당하는 관직을 박사라 불렀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전문학자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당(唐)대에 오면 오경(五經) · 국자(國子) · 태학(太學) · 사문(四門) · 율학(律學) · 산학(算學) · 의학(醫學) 박사 등으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서양의 박사인 '닥터'는 라틴어 '가르친다'는 뜻의'드세레(docere)'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박사 학위가 가르치는 자격을 인정해 주는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의사를 박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중세부터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박사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조선 때다. 중국에서 위만이 망명해 오자 준왕이 박사에 임명하고 100리의 땅을 주었다는 기록이 '삼국지' 동이전에 전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태학박사 이문진이 '신집' 5권을 편찬했고,백제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이 '서기'를 지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백제의 박사 왕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 박사를 수출까지 한 셈이다.
이렇듯 박사의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에 요즘도 학위를 따는 데 열성적인 걸까. 1950년대부터 논문심사제에 의해 박사학위를 주기 시작한 이후 취득자가 해마다 늘어 연 1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통계청과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가 1만322명으로 2008년 9710명보다 612명 증가했다. 1985년만 해도 1400명이었으니 연간 배출되는 박사가 24년 새 6.4배나 증가한 것이다. 국내 박사 총 취득자는 14만7768명에 이른다. 그야말로 박사홍수시대라고 할 만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사에 대한 대접도 많이 달라졌다. 박사 실업자란 말이 나온 건 오래전이고 사원 모집에 응시한 박사를 기피하는 기업도 늘고 있단다. 학력과 능력은 정비례하지 않는 데도 고학력자에게는 임금을 많이 줘야 하는 '학위 효과' 때문이다. 박사가 많이 배출돼서 나쁠 건 없다. 다만 취업이 어려워 공부하는 기간을 늘리다 보니 학위를 따게 되고,사회에 꼭 필요한 '맞춤형 박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박사(博士)란 말이 쓰인 것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기원전 221~206년 중국 진(秦)나라 때 학문을 담당하는 관직을 박사라 불렀다.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전문학자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당(唐)대에 오면 오경(五經) · 국자(國子) · 태학(太學) · 사문(四門) · 율학(律學) · 산학(算學) · 의학(醫學) 박사 등으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서양의 박사인 '닥터'는 라틴어 '가르친다'는 뜻의'드세레(docere)'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박사 학위가 가르치는 자격을 인정해 주는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의사를 박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중세부터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박사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조선 때다. 중국에서 위만이 망명해 오자 준왕이 박사에 임명하고 100리의 땅을 주었다는 기록이 '삼국지' 동이전에 전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태학박사 이문진이 '신집' 5권을 편찬했고,백제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이 '서기'를 지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백제의 박사 왕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 박사를 수출까지 한 셈이다.
이렇듯 박사의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에 요즘도 학위를 따는 데 열성적인 걸까. 1950년대부터 논문심사제에 의해 박사학위를 주기 시작한 이후 취득자가 해마다 늘어 연 1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통계청과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가 1만322명으로 2008년 9710명보다 612명 증가했다. 1985년만 해도 1400명이었으니 연간 배출되는 박사가 24년 새 6.4배나 증가한 것이다. 국내 박사 총 취득자는 14만7768명에 이른다. 그야말로 박사홍수시대라고 할 만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사에 대한 대접도 많이 달라졌다. 박사 실업자란 말이 나온 건 오래전이고 사원 모집에 응시한 박사를 기피하는 기업도 늘고 있단다. 학력과 능력은 정비례하지 않는 데도 고학력자에게는 임금을 많이 줘야 하는 '학위 효과' 때문이다. 박사가 많이 배출돼서 나쁠 건 없다. 다만 취업이 어려워 공부하는 기간을 늘리다 보니 학위를 따게 되고,사회에 꼭 필요한 '맞춤형 박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