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힌 손해를 메우려 입사한 경영 2세는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

2002년 과장으로 입사한 김웅수 대표(37)는 회사 안팎에서 영업보다는 연구에 몰두하는 '기술자' 스타일의 김 회장과는 다르게 대외 활동이 활발하고 발이 넓은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LG증권(현 우리투자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활약하던 그가 부친이 창업한 유일엔시스에 입사하게 된 데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뛰어든 사업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회사에 발이 묶이게 된 것.

김 대표는 2002년 LG증권을 그만두고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유학준비를 하던 중 뿌리칠 수 없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는다. 부친은 아들의 영어실력을 높이 사 당시 필리핀에서 진행 중이던 현지 수출협상에 나서달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경험이 없던 김 대표는 1년간 필리핀 브로커들에게 휘둘려 물건은 거의 못 팔고 소개비 등의 명목으로 수억원을 날리고 말았다. 김 대표는 "사기를 당하다시피한 것이 억울하기도 했고 애널리스트로서 분석하던 기업환경과 현장에서 겪어본 기업환경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껴 유학을 포기하고 입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아들이 사업에 뛰어든 것이 탐탁지 않았다. 회사가 한창 어렵던 시절이라 아들이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하지만 김 대표는 아버지의 기대 이상으로 뛰었다. 3년간 생산현장에서부터 일을 배우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생산관리,재무관리,해외영업 등을 거치며 새로운 먹거리 마련을 위해 고심했다. 김 대표는 기획실장이던 2007년 태양광발전기제조 및 태양광발전소 건설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 김 대표가 달려든 것은 태양광 발전소에서 태양전지판을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이동하게 하는 장치인 '태양광 트래커'를 만드는 일이었다. 1년간의 연구 끝에 유일엔시스는 2008년 독일,프랑스 등 외산에 비해 효율은 20% 이상 높고 가격은 20%가량 저렴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고무 주물기술과 자동차 쇼크업소버 개발 노하우를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여겼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현재 유일엔시스의 해외진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태양광 분야에서만 약 650억원의 매출이 기대된다"며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