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업체 A사는 직원 수가 늘 290명 정도다. 최근 수년간 매출이 증가해 채용을 늘렸으나 그때마다 분사를 통해 직원 수 증가를 억제했다. 전국에서 운영 중인 20개 공장을 모두 '개별기업'으로 등록했다. 직원 수가 300명을 넘고 자본금이 80억원 이상이면 중소기업기본법이 규정한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종 세금 혜택과 자금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이런 편법을 썼다.

한국의 중소기업법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다. 모든 기업을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나눈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순간 160개에 달하는 각종 혜택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대부분 중소기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중소기업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실제 한국은 중소기업 천국이다. 국내 기업 수의 99.9%가 중소기업이다. '경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은 턱없이 적다. 제조업 기준으로 한국의 중견기업(매출 1조원 미만 또는 종업원 1000명 미만) 비중은 0.2%에 불과하다. 미국(2.4%)의 12분의 1,일본(1.0%)의 5분의 1 수준이다. 중견기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한국은 8.1%로 미국(14.4%),일본(15.3%)보다 낮다.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의 성장 경로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1997년 중소기업이던 국내 기업 가운데 2007년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는 119개에 불과했다. 이 중 대기업으로 도약한 회사는 고작 28개다. 그나마 대기업 계열(21개사)과 외국계(4개사)를 제외하면 3개사뿐이다.

이런 현실을 뜯어고치기 위해 정부가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 육성전략'을 내놨다. 18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다. 중소기업을 졸업한 뒤에도 5년 동안은 '세금 부담 완화 기간'을 두기로 했다. 최저한세율을 단계적으로 높이고 기업 상속세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다. 중소기업 때 받았던 자금 지원도 계속 적용받을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절벽처럼 높은 '중견기업으로의 문턱'을 계단식으로 바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300개의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을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축구로 치면 미드필더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도 이날 회의에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투철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며 "세계적 수준의 중견기업 육성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용석/홍영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