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서구 보수주의 전통에선 재산권은 ‘절대적인’가치를 지닌 개념이었다고 한다.

1915년 미국의 유명 보수주의 비평가였던 폴 엘머 모어는 “문명인에게 재산권은 생명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설파하고 다녔다.그에게 생명이란 단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이루기 위한 생물학적인 기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짐승과 달리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거의 모든 것은 우리의 소유물(재산)과 연관이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그가 이같은 ‘과격한’주장을 하게 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20세기초의 거부 존 D 록펠러가 자신의 사유재산권 보호행위를 변호하는데 있어 ‘뜨뜻미지근하게 불확실하고 우유부단한’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엘머 모어에 앞서 앞서 보수주의의 원조로 꼽히는 에드먼드 버크도 1793년 쓴 한 서한에서 “프랑스혁명은 재산권에 대한 경멸이며 재산권의 원칙에 반대해 이른바 국가의 일정한 우월성을 주장한 것으로 이는 프랑스를 파괴하고 전유럽을 급박한 위험속에 몰아넣게 된 모든 사악함을 조장했다”고 기술했다.한마디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발로 잉태된 보수주의 사상의 핵심에 사유재산권 침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가 그 유명한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어떤 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것은 내땅이다’라고 선언할 생각을 가졌고,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은 시민사회의 진정한 창립자였다”며 “그리고 그 말뚝을 뽑아 버리거나 혹은 도랑을 메우면서,‘그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이땅에서 나는 온갖 곡식과 과일들은 모두 만인의 것이며 대지는 어느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여러분은 신세를 망치게 됩니다’라고 동포들을 향해 외친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인으로부터,그리고 얼마나 많은 참상괴 공포로부터 인류를 구해주었을 것인가”라고 외친 것은 버크의 시각에선 가장 불온하면서도 위험한 주장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이후 저명한 역사가 네이미어는 “구획된 땅에 대한 인간집단의 관계가 정치사의 기본적 내용을 이룬다”고 평가하기도했다.

이처럼 서구 보수주의자들이 강력한 사유재산권 이론을 펼친 배경에는 특히 로마적 요소가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한다.바로 재산이야 말로 그 어떤 다른 것보다도 인간의 인간다움 그리고 전자연계에 대한 인간 우월성의 조건을 의미한다는 생각의 뿌리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실제 로마법상 가족을 지칭하는 ‘파밀리아(familia)’라는 단어는 그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의미가 재산이었다고 한다.로마법상의 허다한 판례를 살펴봐도 (가족의)재산은 원로원 결정이나 중대한 범죄를 저지를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계(家系)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고 한다.이어 중세시대 가족법과 혼인법에서 여성의 순결에 대해 엄격하게 강조하고,부인의 부정에 가해진 가혹한 형벌을 처한 이유는 모두 재산과 재산의 정당한 상속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 존중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최근 『무소유』의 저자인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시면서 ‘말의 빚’을 지기 싫다며 자신의 책들을 절판시켜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이에 따라 시내 주요서점에선 『무소유』를 소유하기 위한 경쟁이 붙었고,헌책 가격이 급등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법정스님 관련 서적의 대박을 기대하던 관련 출판사들도 난감한 입장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데.한편으론 무소유를 주장하는 고담준론에는 열광하면서 역설적으로 그같은 주장을 담은 책까지 경쟁적으로 소유하려는 현상을 보면서,문득 소유와 재산을 둘러싼 한국인의 사상적 기반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예전에 사놨던 『무소유』책이 어디 갔는지 도저히 못찼고 있는데 소유욕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

<참고한 책>
J.J.루소, ‘인간불평등기원론’, 이태일 옮김, 범우사 1991
R.니스벳, 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 강정인·김상우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김동욱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