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적막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을 잔다. 이따금 자외선 차단막으로 가린 자동차들이 거리를 질주할 뿐이다.

밤 세상은 붐빈다. 정장 차림의 신사와 숙녀들이 초고층 빌딩 사이로 바쁘게 돌아다닌다. 스타벅스에서는 커피 대신 혈액을 판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려고 줄지어 선다. 이들은 모두 감염된 뱀파이어다.

영화 '데이브레이커스'는 뱀파이어가 지배하는 세상의 이야기다. 인간 세상에서 뱀파이어들이 숨죽이며 사는 게 아니다. 인간들은 피를 공급하기 위해 사육되지만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을 사육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뱀파이어 연구원 달튼(에단 호크)은 인간 혈액 대체재를 개발 중이다. 그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면 뱀파이어 세상도 파멸한다.

분명 새로운 계보의 뱀파이어 영화다. 인간보다 완벽한 뱀파이어의 사랑을 그린 '트와일라잇'처럼 어둡고 음습한 주변인으로 사는 기존 뱀파이어 영화들과는 다르다. 중절모에 검은 수트를 입고 노란 눈동자를 빛내는 뱀파이어 에단 호크는 근사하다.

그러나 그가 인간으로 돌아오는 순간,오히려 초라한 존재가 된다. 마치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풍자한 우화 같다. 우리가 동경하는 곳은 뱀파이어 세계와 비슷할지 모른다. 멋진 신세계지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곳.연출은 2003년작 호주 영화 '언데드(Undead)'로 데뷔한 피터와 마이클 스피어리그 쌍둥이 형제.2000만달러로 이 작품을 만든 것을 고려한다면 후한 평가를 할 만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