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에서 인사 및 노무 업무를 맡고 있는 A씨는 최근 임금피크제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는 선배들이 늘어나면서 이들과 직원들 간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다. A씨는 "상당수가 지점장 출신인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은 후배들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며 서운해하는 반면 후배 직원들은 시아버지가 층층시하로 생겼다며 불만을 토로한다"며 "조직 화합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운영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아 온 은행들이 예상치 못한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나면서 대상자 수가 크게 늘어 곳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어서다.

시중은행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우리 국민 하나 외환은행 등이다. 2005년 우리은행이 처음으로 시행한 이후 많은 은행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만 55세가 되는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할 경우 '명예퇴직'하거나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은행권에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는 직원은 1000명에 육박한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으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지만 연봉이 크게 줄어든다. 첫해엔 전년도 연봉의 70%,다음 해엔 60%,그 다음 해엔 50%로 줄어드는 식이다. 담당하는 업무도 2~3개 영업점을 돌며 내부 감사를 하거나 연체 채권 회수,민원 상담 등으로 바뀐다.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들에게 2~3개 영업점의 내부 감사 업무를 맡긴 한 은행의 경우 일부 일선 지점에서 "지점장이 2~3명이 됐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 직원은 "전직 지점장이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돼 우리 지점의 내부 감사를 담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다"며 "다들 잘 모신다고 하는데도 섭섭해할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지점장 시절을 잊지 못하고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가 하면 왜 자기에게는 보고하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며 "일하랴,임금피크제 선배 눈치 보랴,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내년 7월1일부터 허용되는 복수노조도 걱정이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들이 또 하나의 노조를 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임금피크제 적용 이전에는 지점장 등 간부 신분이어서 노조 가입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직급이 일반 직원으로 전환된 이후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지금의 노조에는 여러가지 사정상 가입하기 힘들지만 내년 7월부터는 따로 노조를 만들 수 있다.

한 은행 인사부장은 "임금피크제 직원들이 별도로 노조를 결성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지만 기존 노조에 대한 불만이 커 이런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며 "현재의 노조도 임금피크제 적용자들이 노조를 새로 만들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임원은 "임금피크제 적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근무 기강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별도의 노조까지 생기면 경영진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