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새싹이 돋고 꽃이 핀다.
먹을거리도 새로워진다.
산과 들에는 봄나물이 나오고 바다에서는 봄철 해산물이 잡히는 때다.
봄철 입맛을 돋우는 별미와 산지 유명 음식점들을 정리해 본다.

(1) 주꾸미

주꾸미는 봄에 알을 밴다. 봄 주꾸미는 낙지보다 맛있다. 지금부터 한 달간이 제철이다. 서해안 어디든 주꾸미가 난다. 잡는 방법은 통발이나 소라 껍데기 엮은 것을 쓴다. 주꾸미는 알을 낳기 위해 소라 껍데기 속으로 숨는데,이런 습성을 이용해 잡는다. 어시장에서는 '소라 주꾸미'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라 껍데기를 이용해 잡았으니 알이 든 주꾸미라는 뜻이다.

충남 서천 홍원항,무창포와 전북 부안 변산반도가 주꾸미 산지로 유명하다. 서천에서는 주꾸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주꾸미는 알이 꽉 차기 직전의 것이 맛있다. 산란 직전에 이르면 주꾸미의 영양분이 알에 집중돼 살은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꾸미의 다리는 생으로 먹고 머리(몸통)는 삶아 먹어야 제맛이다.

(2) 미나리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초현리,음지리,평양지,상리 일대를 '한재'라고 부른다. 봄이면 이 한재에 미나리가 지천이다. 물이 풍부하고 일조량이 많으며 일교차가 커 미나리 재배에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매년 2월에서 5월까지 이곳에 가면 밭에서 갓 거둔 미나리를 맛볼 수 있다.

한재는 휴일이면 미나리를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좁은 계곡 길에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미나리밭 옆에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비닐하우스를 지어놓았는데 여기서 미나리를 먹는다. 손님들이 고기를 사오면 불과 불판을 제공하고 미나리를 판매한다. 대부분 삼겹살을 구워 미나리를 돌돌 말아 먹는다. 한재에 있는 식당들도 미나리 음식을 낸다. 미나리 비빔밥에 미나리전이 주종이고,돼지수육에 미나리를 곁들여 내기도 한다.

(3) 가오리

흔히 '간재미'라고 불리는 가오리는 서해와 남해에서 두루 잡힌다. 2월 말부터 6월까지가 제철이다. 충남 당진 앞바다에서 특히 많이 잡히고 이곳 가오리를 최고로 쳐준다. 당진 장고항에 가오리잡이 배가 들어오고 근처에 가오리 음식점이 여럿 있다. 4월부터는 당진의 또 다른 명물인 실치도 나온다.

가오리는 대부분 생으로 먹는다. 껍질을 벗기고 길쭉하게 토막을 쳐 오이 미나리 등을 넣고,고춧가루 들기름 설탕 등으로 버무려 먹는다. 이때 토막 친 가오리의 살을 식초에 잠시 주물러 새콤함에 쫄깃한 식감까지 보탠다.

홍어의 간을 진미로 치는데 가오리의 간도 이에 못지않다. 부드러운 식감에 연한 기름 향이 은은하게 전해진다. 양이 적어 한 마리에 두어 점밖에 얻을 수가 없다.

(4) 대게


대게잡이는 초겨울에 시작하지만,제 맛을 내는 때는 이른 봄이다. 봄빛에 바다의 색이 옅어지면 대게는 더 살이 오른다.

대게 앞에는 통상 '영덕'이 붙는다. 예전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동해안의 대게가 영덕에 집결해 내륙으로 이송돼 그리 이름 붙은 것이라 한다. 영덕 아래의 포항,그 위의 울진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고성 등지에서도 대게는 잡힌다. 이 중 대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은 울진이다. 대게를 싸게 먹자면 울진 죽변항이 좋다.

대게는 같은 그물에 올라온 것이라 해도 때깔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보통 황금색,은백색,분홍색,홍색 등 네 종류로 구분한다. 색깔이 짙을수록 살이 단단하고 맛있다고 한다. 특히 황금색이 도는 것을 참대게 또는 박달대게라 부르며,최상급으로 취급한다.

대게 맛은 크기에 달려 있지 않다. 살이 얼마나 단단하게 찼는가가 중요하다. 산지에서는 아주 큰 대게도 '물게'이면 경매에 부치지 않는다. 같은 크기라면 '물게'와 살이 제대로 찬 대게의 가격 차이는 4~5배나 난다. 소비자들은 이를 잘 모르니 '물게'를 속아 사는 일이 허다하다. '물게'는 배 부분을 손으로 눌렀을 때 무르며 물이 나오기도 한다. 상인이 뭐라 하던 배를 힘껏 꾹 눌러보고 사는 것이 요령이다.

(5) 조기(굴비)

조기는 제주도 서남쪽과 상하이 동쪽의 따뜻한 바다에서 월동을 한다. 그뒤 3월 하순에서 4월 중순 영광 법성포의 칠산 바다를 거쳐 4월 하순에서 5월 중순 사이에 연평도에 닿고,6월 초순에는 압록강 대화도 근처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는 4월 중 알이 배는데 이 시기가 곡우 무렵이므로 예전부터 '곡우사리조기'를 최상품으로 쳤다.

조기 가공품으론 법성포 굴비가 유명하다. 법성포 굴비는 염장법이 독특하다. 1년 넘게 보관해 간수가 빠진 천일염으로 조기를 켜켜이 잰다. 이 염장법은 손이 많이 가고 조기의 크기에 따라 간하는 시간을 조절하는 일이 까다롭다. 법성포에서는 이를 '섶장'이라 부르며 외지인에게는 자세한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소금물에다 조기를 담갔다가 말리는 타지역의 굴비를 법성포 사람들은 '물굴비'라 하여 하품으로 취급한다. 전남 영광군 법성포에 가면 간조기와 굴비를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굴비정식을 내는 식당들도 많은데 맛은 거의 비슷하다. 1인분에 1만5000~2만원 정도이며,2인상 또는 3인상 이상만 주문을 받는다.


글/사진=황교익 맛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