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이병용 전 정무실장의 부친상을 조문하기 위해 강원도 철원까지 갔다. 정 총리는 이 전 실장의 '의전 실수'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문은 다소 의외라는 게 총리실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 전 실장은 정 총리가 지난 1월 말 이용삼 전 의원을 조문할 때 상주들에게 말을 잘못하는 결례를 범할 때 수행했던 간부였다. 지난달 말에는 단식 중이었던 양승조 민주당 의원에게 만찬 초청장을 보내 정 총리가 야당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도록 한 곳도 정무실이었다. 이 전 실장은 지난달 말 김유환 전 국가정보원 경기지부장이 새 정무실장으로 임명되면서 총리실을 떠났다.

그런데 정 총리는 18일 전북지역(이리 남성고,완주 혁신도시,새만금) 방문을 마치고 오후 6시 정부중앙청사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강원 철원으로 향했다. 일부 간부들이 너무 멀다며 말렸으나 정총리는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인데) 가서 위로 하는 게 맞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정 총리의 담백한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고 평했다. 정 총리는 상가에서 30~40분간 머물며 이 전 실장을 위로했다.

정 총리는 지난 17일에는 스스로 '의전 결례'를 범했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상공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정 총리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엘리베이터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면서 기다린 것이다. 의전팀은 순간 긴장했다. 손 회장은 정 총리의 경기고,서울대 선배다.

정 총리는 업무보고를 하러 온 각 부처 차관이나 실장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꼬박꼬박 존칭어를 쓴다. 정 총리의 이 같은 '격식파괴'에 대해 의전팀을 비롯해 간부들이 "총리의전에 신경 써 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정 총리는 "이래야 내가 편안하니 그렇게 합시다"라고 자기식을 고집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