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3인방'의 경영 혁신이 화제다. 능력과 성과 중심 인사로 '공기업=철밥통'이란 공식을 깨는가 하면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이라크 유전개발,해외 석유기업 인수 등 굵직한 '딜'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민간 대기업 CEO(최고경영자)출신이 이끌고 있다. 김쌍수 한전 사장은 LG전자 부회장,주강수 가스공사 사장은 현대자원개발 대표,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은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을 지냈다. 민간의 성과 중심 마인드가 공기업에 접목되는 것으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공기업 경영 민영화'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파격 또 파격

김쌍수 한전 사장은 지난해 3월 공개경쟁 보직제도를 통해 팀장급 이상 직원 40%(438명)를 물갈이하고,보직경쟁에서 탈락한 52명을 무보직 발령 내면서 한전을 발칵 뒤집어 놨다. 이 중 37%인 19명은 결국 회사를 떠났다. 부장급 이상에게 부하직원 선발권을 넘기되 철저한 성과평가로 고질적인 인사청탁 관행도 무너뜨렸다. 지난 12일에는 '성과연동 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해 또 한번 직원들을 긴장시켰다. '김쌍수식 개혁'은 다른 공기업으로 퍼지고 있다.

가스공사가 지난 1월 팀장급 이상 185명을 개방형 직위공모로 뽑고 8명의 보직을 빼앗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서열파괴를 통해 최초의 여성팀장이 발탁됐다. 취임 초 '낙하산 인사'라며 주 사장 취임을 반대하던 노조도 지금은 주 사장을 인정하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노조와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되는 것은 된다,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노사협력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공기업 최초로 외국인 임원을 영입했다. 석유개발원장에 다국적 석유기업 코노코필립스 출신 휴 이튼 로우릿 박사,인사고문에 영국 브리티시가스 출신 로버트 데이비드 엘리엇 박사를 스카우트한 것.이들의 연봉은 강 사장보다 훨씬 많다. 지난 2월에는 노조와 단체협상을 통해 노조 탈퇴를 가로막던'유니언 숍' 제도를 철폐했다.

굵직한 성과도 돋보인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400억달러 규모의 UAE 원전 수출을 주도했고 가스공사는 이라크 주바이르 유전과 바드라 유전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렸다. 석유공사는 총 12억달러를 투입해 캐나다 하베스트,페루 페트로텍,카자흐스탄 숨베 등 해외 석유기업 3곳을 인수했다.

◆캐릭터는 '3인 3색'

'변화와 혁신'이란 공통 분모를 공유하고 있지만 '빅3'CEO의 캐릭터는 차이가 많다. 김 사장은 과거 LG시절 '쌍칼'이란 별명처럼 뚝심있고 저돌적인 추진력이 강점이다. 한전 건물 곳곳에 붙은 '혁신 10계명'이 이를 잘 보여준다.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작은 변화는 불가능해도 큰 변화는 가능하다)''조직을 파괴하라' 'NO 없는 도전' 등 곳곳에서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이전보다 업무 강도가 세졌고 직원들의 긴장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주 사장은 '소프트 파워'를 내세운다. 대표적인 게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돌리는 모닝콜.그는 보통 새벽 4시에 잠을 깨는 아침형 인간이다. 밤 사이 간부들이 보낸 이메일을 읽고 일일이 답신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미안한데 궁금해서…"라며 전화를 건다.

팀장급 이상 직원에게 '블랙베리'를 돌리고 자신도 수시로 업무에 활용한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회사 문서를 블랙베리로 볼 수 있게 바꿔 보내면 사장이 해외에서도 곧바로 확인하고 코멘트를 한다"고 귀띔했다.

주 사장은 대표적 '러시아통'이기도 하다. 작년 9월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전 세계 11개 에너지 회사 CEO를 초청하면서 국내에선 유일하게 주 사장을 불렀다. 현대시절 자원 개발 현장을 누비며 쌓은 인맥과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과의 사업관계 덕분이었다.

대우에서 영업과 재무관리로 잔뼈가 굵은 강 사장은 치밀한 성격인데다 지독한 '일벌레'다. 대우 시절엔 주말에도 일에만 파묻혀 있다고 해서 '강 대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석유공사에 와서도 취임 초 하루라도 빨리 업무 파악을 하기 위해 밤10시까지 회사에 남아 공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사장이 밤 늦게까지 남아 있으니 직원들도 퇴근하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다그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을 중시한다. 거의 한 달에 한번씩 직원들과 등산을 간다. 지난 1월초에는 실장급 이상 간부 40여명과 함께 태백산에 다녀왔고 2월에는 팀장급과 마니산에 올랐다. 술은 거의 안한다.

◆풀어야할 숙제

에너지 공기업 CEO 빅3가 풀어야할 과제도 있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실적이 문제다. 한전은 2008년 3조6000억원 영업적자에 이어 작년에도 5600억원의 적자를 냈다. 가스공사는 4조6000억원에 달하는 미수금이 걸려 있다. 두 회사 모두 유가와 환율이 오르는데 판매가격을 올리지 못한 결과다. 전기요금연동제와 가스요금연동제가 도입돼야 해결될 수 있지만 물가 때문에 간단치 않다. 김 사장의 경우 '개혁 피로증'을 호소하는 직원이 적지 않은 것도 고려해야할 점이다. 석유공사는 대형화가 과제다. 현재 세계 100위권인 석유공사의 위상으로는 밖에서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적어도 30위권으로 도약해야 하는데 자금부담이 만만치 않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