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에 있는 한국열처리(회장 이희영).섭씨 1000도가 넘는 고온의 불꽃 속에서 기계 부품,유압기기 부품,탱크의 캐터필러 등을 열처리하는 국내 최고의 전문기업이다. 이곳에서 담금질한 금속은 수십배 강해진다. 랜딩기어, 엔진 등 항공기 부품과 자동차 부품 등이 이 회사의 창원 공장에서 열처리를 통해 완성된다.

한국열처리는 항공기 부품을 열처리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전문 업체다. 제조업 강국인 일본에서조차 두세 개밖에 없고,세계적으로도 10여개사에 불과하다. 그만큼 기술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열처리 업체들은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상당수가 외국인 근로자를 쓰고 있을 뿐 아니라,한 명이라도 더 쓰려고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외국인을 단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다. 직원 80명 모두가 한국인이다.

창업자인 이희영 회장(70)이 2005년 외국인들을 다 내보냈기 때문이다. 열처리 경력이 45년에 이르고 지금도 여전히 목장갑에 작업복 차림의 현역 '대장장이'인 이 회장은 "외국인에게만 의존하면 열처리의 대(代)가 끊긴다"며 임직원들에게 "더 이상 외국인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임직원은 없었다. 내국인만으로 외국인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회장은 1990년대 초반 외국인 산업연수생 도입에 앞장섰던 주인공이다. 당시 그는 열처리조합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베트남인 100명을 국내 20여개 업체에 배치했다. 열처리 업체들의 인력난을 두고볼 수 없어서였다.

한국열처리도 8명을 입사시켰다. 한때 이 회사에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외국인이 15명에 달했다. 외국인을 내보낸 후 5년 동안 이 회사는 내국인 근로자를 확보하느라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임금을 30%가량 더 주고 한국인을 뽑았다. 10명을 채용하면 9명은 '불질'이 싫다며 그만뒀다. 그래도 한 명은 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열처리는 자동차와 기계,항공,금속산업의 기둥이고 현장에서 최소한 5년 이상 도제식으로 인력을 키워야 하는 업종입니다. 외국인들은 언젠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내국인을 키우지 않으면 이 땅의 열처리산업은 끝나는 것입니다. "

이 회장은 고려대 법대를 나왔지만 깨알 같은 법전을 들여다보는 게 싫어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보다 일곱 살 어린 일본인 '사수'에게서 야단을 맞아가면서 열처리를 배웠다. 코피를 수없이 쏟았다. 4년여 동안 열처리 기술을 익힌 뒤 귀국해 1970년 서울 성수동 성수공단에서 한 명을 데리고 창업해 40년 동안 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창원 · 완주=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