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인은 '한국홍보대사'…우리부터 마음 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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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거주 외국인 돕는 다문화총연합회장 권영기 변호사
1996년 부산지방법원의 한 법정.조선족 선원 6명이 당시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사건'으로 1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남태평양으로 조업을 나갔던 한국 국적 원양어선에서 자신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 선원 11명을 선상에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담당판사였던 권영기 한국다문화총연합회 회장(49)은 너무나도 순박해 보이는 조선족 선원들의 표정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제로 떠밀린 뒤 배에 매달린 한국인 선원을 어획도구로 내려찍을 정도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만한 사람들 같아 보이지 않았다.
권 회장은 사건의 본질은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주의 문화의 정면 충돌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일하는 속도가 느리고 적당히 해도 됐는데 작업량에 따라 수입이 정해지는 한국인 선원들은 이를 용인하지 못하고 조선족들을 심하게 대했어요. 조선족들은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못된 사람들이 다 있나'라고 여겼고요. 문화가 완전히 다르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은 것이지요. "
권 회장은 이때부터 다문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문화를 연구하는 대학교수들을 수시로 만나 얘기를 나누고 문화충돌의 해결 방안을 고민했다.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개업한 2000년에는 비록 자금 문제 등으로 무산되긴 했지만,페스카마호 사건의 영화화를 추진했을 정도였다.
그러던 그가 지난 9일 창립된 한국다문화총연합회의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다문화 문제 해결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연합회는 이주노동자센터와 다문화가족복지센터 등 전국 100여개 다문화 관련 기관들을 통합한 기관.권 회장은 "만약 페스카마호 선원들이 서로 한국과 조선족의 문화에 대해 교육받았다면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에 있는 다문화인(외국 출신 국내 거주자)이 현재 120만여명에서 앞으로 400만~500만명까지 늘어날 텐데 그에 따라 생길 문화충돌을 연합회가 방지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우선 다문화인 기업가나 자영업자들로 이뤄진 '기업위원회'를 파키스탄,말레이시아,필리핀 등 나라별로 만들 생각이다. 다문화인들이 '한국에서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구나'라는 모델로 삼아 희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북한 새터민들도 대상이다. 권 회장은 "북한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익숙해 인종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 출신 사람들보다 오히려 문화충돌 가능성이 높다"며 "연합회가 자본주의 논리를 가르치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또 모든 정부 부처,광역자치단체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다문화 문제 해결 사업을 함께 펼칠 계획이다. 경찰청과 협의해 민간 범죄예방위원에 다문화인들을 참여시켜 치안의 주체로 만들고 다문화인들이 입영하기 전에 국방부와 함께 다문화인과 현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하는 사업도 구상 중이다.
권 회장은 다문화 사업이 단순히 갈등 예방뿐만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잘 나가는 일본이 쇠락한 것은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일본이 무지막지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받쳐줄 허리가 없어요. 역시 고령화 문제가 심한 한국도 외국에서 젊고 똑똑한 인재를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21세기는 인력전쟁의 시대입니다. "
권 회장은 다문화인들이 '한국 홍보대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휴대폰 생산 일을 하다 자국으로 돌아간 다문화인이 그 나라에서 '한국 휴대폰이 최고'라고 말하고 다니면 최고의 홍보"라며 "한국인들이 아직 다문화인들에 대해 폐쇄적인데 빨리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