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타이거 우즈와 김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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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인이 아니다. 코블리네이시언(Caublinasian)이다. " 1997년,스물두 살에 흑인 최초로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는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이같이 규정했다. 흑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그를 통해 인종 콤플렉스를 떨쳐내려 했던 흑인들에게 그의 발언은 '배신'이었다.
하지만 '코블리네이시언'이라는 조어(造語)에 대한 우즈의 설명은 논리정연했다. "나의 아버지는 백인(Caucasian)과 흑인(Black),아메리칸 인디언(Indian)의 혼혈이다. 어머니는 중국계 태국인(Asian)이다. 이 모든 내력을 담아내는 용어가 없었다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
이 발언은 미국의 수많은 '우즈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운전면허 응시원서 등 공공서류의 인종 기재항목이 '백인,흑인,히스패닉,아메리칸 인디언,아시안,기타' 중에서 택일하도록 돼 있었다. 숱한 인종이 섞여서 수백년을 살아온 미국의 인종 지도를 '객관식'으로 분류한다는 자체가 부당하다는 게 '우즈 선언'의 핵심이었다.
2010년 마스터스 대회를 통해 프로골프계 복귀를 선언한 우즈를 보면서 10여 년 전의 일화를 되새기는 데는 까닭이 있다. 한국사회에도 적지 않은 '우즈들'이 있다는 사실을,아니 우리들 대부분이 '우즈들'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따져볼 때가 됐기 때문이다. 대륙과 대양을 연결하는 반도 지형(地形)에서 반만년 살아온 한국인들이다. 숱한 문물과 사람이 거쳐가면서 얼마나 많은 피가 섞였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청와대는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앞두고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인도인의 후예'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김 여사의 본관(本貫)인 김해김씨의 시조모(始祖母)가 인도 아유타국 공주였던 허황옥(許黃玉)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우즈식으로 정의하자면 '코린디안(Korindian)'이라고 할 김해김씨는 대통령(김대중)과 국무총리(김종필)를 비롯해 숱한 이 땅의 지도자들을 배출해 왔다.
박정희 정부시절 내무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지난해 별세한 김치열씨의 가문은 내력이 더 드라마틱하다. 그의 본관인 사성(賜姓) 김해김씨는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우(右)선봉장으로 한반도를 침공했던 왜장 사야가(沙也可)가 시조다. 사야가는 조선의 문명을 흠모해 동래성에 상륙한 이튿날 곧바로 선조에게 투항하고,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의 후손들 스토리는 지금도 NHK 같은 일본 언론에서 가끔씩 다뤄지는 역사적 에피소드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50여개 성씨 가운데 130여개 성씨의 시조가 귀화 외국인이다. 아랍,이란,위구르,몽골,베트남 등 출신국도 다양하다.
최근 한국에 정착하는 외국 이민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 같은 고고학자들이 요즘을 삼국시대에 이은 '2차 이민 폭발시기'로 규정할 정도다. 미증유의 저출산-인구감소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에 이민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포용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나이와 성별,학벌 등 사람들을 재단하는 껍데기에 '인종'도 함께 담아 내버려야 한다. 시차(時差)의 문제일 뿐,우리들 상당수는 어차피 외국 이민자들의 후예 아니던가.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
하지만 '코블리네이시언'이라는 조어(造語)에 대한 우즈의 설명은 논리정연했다. "나의 아버지는 백인(Caucasian)과 흑인(Black),아메리칸 인디언(Indian)의 혼혈이다. 어머니는 중국계 태국인(Asian)이다. 이 모든 내력을 담아내는 용어가 없었다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
이 발언은 미국의 수많은 '우즈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운전면허 응시원서 등 공공서류의 인종 기재항목이 '백인,흑인,히스패닉,아메리칸 인디언,아시안,기타' 중에서 택일하도록 돼 있었다. 숱한 인종이 섞여서 수백년을 살아온 미국의 인종 지도를 '객관식'으로 분류한다는 자체가 부당하다는 게 '우즈 선언'의 핵심이었다.
2010년 마스터스 대회를 통해 프로골프계 복귀를 선언한 우즈를 보면서 10여 년 전의 일화를 되새기는 데는 까닭이 있다. 한국사회에도 적지 않은 '우즈들'이 있다는 사실을,아니 우리들 대부분이 '우즈들'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따져볼 때가 됐기 때문이다. 대륙과 대양을 연결하는 반도 지형(地形)에서 반만년 살아온 한국인들이다. 숱한 문물과 사람이 거쳐가면서 얼마나 많은 피가 섞였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청와대는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앞두고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인도인의 후예'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김 여사의 본관(本貫)인 김해김씨의 시조모(始祖母)가 인도 아유타국 공주였던 허황옥(許黃玉)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우즈식으로 정의하자면 '코린디안(Korindian)'이라고 할 김해김씨는 대통령(김대중)과 국무총리(김종필)를 비롯해 숱한 이 땅의 지도자들을 배출해 왔다.
박정희 정부시절 내무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지난해 별세한 김치열씨의 가문은 내력이 더 드라마틱하다. 그의 본관인 사성(賜姓) 김해김씨는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우(右)선봉장으로 한반도를 침공했던 왜장 사야가(沙也可)가 시조다. 사야가는 조선의 문명을 흠모해 동래성에 상륙한 이튿날 곧바로 선조에게 투항하고,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의 후손들 스토리는 지금도 NHK 같은 일본 언론에서 가끔씩 다뤄지는 역사적 에피소드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50여개 성씨 가운데 130여개 성씨의 시조가 귀화 외국인이다. 아랍,이란,위구르,몽골,베트남 등 출신국도 다양하다.
최근 한국에 정착하는 외국 이민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 같은 고고학자들이 요즘을 삼국시대에 이은 '2차 이민 폭발시기'로 규정할 정도다. 미증유의 저출산-인구감소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에 이민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포용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나이와 성별,학벌 등 사람들을 재단하는 껍데기에 '인종'도 함께 담아 내버려야 한다. 시차(時差)의 문제일 뿐,우리들 상당수는 어차피 외국 이민자들의 후예 아니던가.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