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인도에 진출한 전자부품 K사는 최근 현지 과세당국으로부터 난데없이 세금납부서를 통지받았다. 지난해 6월 인도 정부가 배당분배세를 신설,총 배당금의 17.0%를 세금으로 부과했기 때문이다. K사 관계자는 "배당금을 준 기업에 세금을 부과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배당을 받은 한국 본사도 세금을 내야 했던 것.하나의 세원(稅原)에 대해 인도와 한국에서 이중과세를 당한 셈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와 조세 협상에 들어갔으나 재정 악화를 우려한 인도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각국,외국기업 과세 강화

21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과 이중과세방지협정(국제조세협약)을 맺고 있는 국가들의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과세 현황을 파악한 결과 미국 중국 브라질 인도 등의 조세당국이 최근 현지 진출 다국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과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율이 높은 국가'에서 발생한 소득을 '세율이 낮은 국가'로 넘겨주는 사례를 적극적으로 적발해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현지 진출 생산법인이 본국으로부터 반제품 수입가격을 높게 책정해 현지 소득을 낮게 신고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하고 있다고 보고 외국 투자법인에 대해 최근 4년간 납세 현황을 면밀히 조사 중이다. 본사가 해외 자회사와 원재료 및 제품,서비스 거래를 할 경우 적용되는 가격인 '이전가격'을 조작해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대상에는 상당수 한국 기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정부도 최근 다국적 기업들의 이전가격을 문제 삼아 과세를 늘리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기업은 지난해 현지 과세당국에 사상 최대 규모인 7000만~8000만달러의 세금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양국간 조세협약이 맺어져 있는데도 브라질 과세당국이 독자적인 과세 방식을 적용해 과세를 늘리고 있다"며 "(과세 문제에 대해) 협상해야 하지만 세목이 워낙 복잡해 현황 파악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브라질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복잡한 과세체계로 '브라질 코스트'라는 별칭까지 생겨날 정도다.

◆과세분쟁도 증가

지난해 A사는 베트남에 진출한 자회사의 투자지분 50%(약 100만달러)를 다른 베트남 법인에 넘기면서 174만달러가량의 양도차익을 얻은 것에 대해 48만달러를 과세당했다. 한 · 베트남 조세조약에 따라 주식 양도차익을 베트남에서 과세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사는 억울함을 호소했고 한국 국세청이 나선 뒤에야 과세하지 않는 쪽으로 해결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출품 임가공에 대한 과세가 문제가 됐다.

세금 체계가 복잡한 인도와 브라질의 경우 이곳에 진출해 있는 해외 기업들의 불만이 치솟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세목이 80여개에 달하고 세법도 자주 바뀌는 탓에 절세를 하려다 탈세를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게 생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브라질 정부에 내는 세금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지만 기업들의 법무팀에선 브라질 세금 체계도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인도 역시 세금 체계가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재정부 관계자는 "배당분배세와 같은 독특한 세목이 많이 생겨 국제 조세협약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세부담이 늘어나자 우리 정부는 조세협정 재개정 문제를 놓고 협상 중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 간에도 로열티 수입에 대한 과세와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조세당국은 한국에 진출한 미국기업들이 벌어들이는 기술사용료(로열티) 수입에 대해 한국 정부가 매기는 세율을 낮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세수가 부족한 우리 정부 역시 들어줄 상황이 아니다. 때문에 올해 초 열기로 했던 한 · 미조세협정 개정을 위한 3차 회의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정종태/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

●이전가격=본사와 지사 간 거래 때 적용되는 가격으로 전 세계 조세당국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포인트다. 국가별 세금의 종류나 세율이 다른 점을 이용해 세율이 낮은 나라에 이익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이전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이전가격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각국의 세법이 다르고 과세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조세분쟁의 주요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