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발(發) 경기 둔화 경고등이 켜졌다. 칠레 지진 등에 따른 일시적인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치솟고 있는 펄프 가격은 차치하더라도 니켈 아연 구리와 같은 비철금속,철광석 코발트 등 대부분의 산업용 원자재 가격이 올 들어 급격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니켈 등 일부 원자재는 최근 1년 새 2배 이상으로 값이 치솟은 상태다.

원자재값 상승은 대다수 제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제품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경우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지는 만큼 경기회복기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원자재 가격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며 관련 대응 조치 마련에 들어갔다.

◆니켈값 1년 새 123% 급등

특수강이나 전기통신 재료로 널리 쓰이는 니켈은 지난 19일 런던금속거래소(LME)거래가격이 t당 2만2450달러로 1년 전에 비해 123.8% 급등했다. 올해 1월 초에 비해서도 상승률이 20.3%에 달한다.


동과 아연도 거래 가격이 t당 7498달러,2317달러로 최근 1년간 각각 89.2%,87.4% 올랐다. 구리도 세계 최대 생산국인 칠레의 지진 여파로 최근 가격이 급등하면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t당 7400~75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철광석 가격 역시 크게 오르고 있다. 세계 주요 광산업체들이 최근 가격 조정에 나서면서 현물 가격이 이달 들어 t당 140달러를 웃돌고 있다. 국제 철광석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철강 가격 인상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2차전지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원료로 쓰이는 리튬과 인듐,몰리브덴,코발트 등 매장량이 부족한 희소금속 가격도 오름세이긴 마찬가지다.

◆원자재 확보 경쟁 치열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 요인은 몇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세계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강의 경우 미국 공장 가동률이 70% 수준으로 올라가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원자재에 대한 투자 매력이 부각되면서 전 세계 위험 자산의 투기 수요가 가세하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중국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 간 원자재 확보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중국은 지난해부터 막대한 달러 보유액을 바탕으로 원자재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구리 아연 니켈 등 주요 비철금속은 세계 공급 물량 중 중국 수요 비중이 평균 30~40%에 달하고 있다.

◆원자재 수급 비상

원자재 가격 급등은 당장 산업계에 피해를 주고 있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필요한 물량을 제때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다.

조달청 관계자는 "대기업은 자체 거래선을 이용해 중장기 계약을 맺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하루 단위로 조달하는 '스폿 물량'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물량 확보조차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선물시장을 통한 다양한 헤징(위험 회피) 수단을 동원해 가격 상승 위험을 피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상당수가 가격 변동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원자재값 상승은 경제 회복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수출품 가격으로 전가시키지 못할 경우 수익률 저하로 연결된다"고 우려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