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규제에 대한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은행의 자본력과 유동성을 강화함으로써 한 부문의 부실이 금융시스템을 붕괴시켜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자는 것이 골자다. 그렇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규제방안은 국내 금융시장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규제 방안을 만드는 바젤위원회(BCBS)나 금융안정위원회(FSB) 회의에 참석하는 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국내 상황과 득실을 감안해 의견을 적극 개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은행 자본 강화는 한국에 유리

바젤위원회는 지난해 말 은행 자본의 질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금융규제 초안을 발표했다. BIS(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을 보통주와 이익잉여금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BIS비율을 계산할 때는 우선주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권) 등도 자기자본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우선주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등은 위기가 닥쳤을 때 버틸 수 있는 자기자본으로 보기 힘들다는 게 주요국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바젤위원회는 보통주와 이익잉여금 등 이른바 핵심 자기자본(Core Tier-1)으로 새 BIS자기자본비율 가이드라인을 제시키로 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준은 4~6%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내 은행들은 이처럼 자본 규제가 강화돼도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 같은 규제가 도입되는 것이 글로벌 경쟁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국내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BIS자기자본비율은 14.36%에 이른다. 후순위채 등 보완자본을 뺀 기본자본의 비율도 10.86%에 달한다.



◆유동성 규제 높아지면 채권시장 왜곡

바젤위원회 등은 은행에 위기가 닥쳐도 한 달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유동성커버리지 비율'을 도입키로 했다. 은행이 갖고 있는 유동성 자산이 한 달간 내줘야 하는 돈보다 많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유동성 자산에 대한 정의가 까다로워질 것이란 데 있다.

리먼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은행의 유동성비율 평가에서 CDO(부채담보부증권)는 유동성자산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리먼 사태가 터지고나자 전혀 회수할 수 없는 자산이 돼 버렸다. 때문에 앞으로 유동성자산은 국채나 단기 RP(환매조건부채권) 등으로 한정될 공산이 크다. 한은 관계자는 "유동성비율이 강화되면 은행들이 국채를 대거 편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채권시장에서 회사채는 줄고 국채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금융규제 강화로 채권시장 왜곡현상이 심해질 수도 있다.

◆'볼커룰' 도입 금융산업 성장에 직격탄

미국 등 주요국들은 국제적으로 영향이 큰 대형은행들(SIBs · Systemically Important Banks)에 대해선 추가 자본을 쌓게 하는등 규제의 강도를 더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은행 중에선 SIBs에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은행이 없어 이 규제책은 국내에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볼커룰이다. 상업은행으로 하여금 자기계정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금융회사 인수합병(M&A) 때 규모를 제한하는 것이 볼커룰의 핵심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국내 은행들은 투자은행 업무를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며 "이런 상황에 볼커룰이 적용되면 금융산업 성장에 타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우리금융의 민영화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볼커룰이 도입되면 우리금융의 민영화방식으로 당국이 적극 검토 중인 국내 금융지주와의 합병 방안은 물건너가게 된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