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없어 책 못 만든다…출판업계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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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수급 불안에 재고 바닥…비철금속값도 급등
출판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오는 25일 홈쇼핑을 통해 아동서 시리즈를 판매하기로 한 K출판사는 책을 인쇄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종이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필름이 인쇄소에 넘어간 상태에서 발이 묶인 단행본도 4종이나 된다. 종이 유통업체인 N지업사는 물량 부족으로 지난달부터 출판사 · 인쇄소에 종이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책 인쇄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미색 모조지 공급이 특히 부족한 상황이다.
출판계가 '종이 대란'에 직면했다. 지난달 말 칠레 강진으로 인해 국내 펄프 수요의 30%가량을 공급하는 펄프공장 세 곳이 가동을 중단한 데다 유럽 펄프업체들의 생산량 축소,중국의 원자재 블랙홀 현상,지방선거 인쇄물 수요까지 맞물리면서 수급이 불안해진 탓이다.
중소형 출판사들의 어려움은 더 크다. 결제가 원활하거나 거래가 꾸준한 단골들에게 우선 종이를 대주다 보니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출판사들은 필요한 종이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미 한 달 전부터 종이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주니어 · 아동서용 모조지의 공급난이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마무리》 등 법정 스님의 책으로 최근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출판사 문학의숲도 쇄도하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주문을 받고도 찍지 못한 책이 25만부에 달한다. 고세규 문학의숲 대표는 "작년에 미리 사둔 종이와 몇 군데 거래처의 재고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주문량에 비하면 태부족"이라고 밝혔다. 한 지업사 대표는 "책 인쇄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백상지 80g짜리(종이 1㎡ 무게가 80g)는 나오기가 무섭게 출판사들이 집어가고 있다"며 "지업사들이 확보한 재고도 거의 동나 종이 품귀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원자재 값 급등은 출판업계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니켈 아연 구리 등 비철금속과 철광석 코발트 등 대부분 산업용 원자재 가격이 올 들어 급격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니켈은 최근 1년 새 가격이 2배 이상 올랐다.
원자재 값이 급등하면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하고 물가가 불안해진다. 정부는 원자재발(發) 경기 둔화 가능성을 염려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세계 주요국의 원자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화동/정종태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