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거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PB영업을 하는 삼성증권 UHNW(초거액자산가)사업부는 지난달 초 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에 투자하는 '스팩사모증권 투자신탁'을 처음 내놨다. 이 펀드는 스팩에 전체 자산의 90% 이상을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울 테헤란지점과 신라호텔지점 두 곳에서만 판매했음에도 사흘 만에 150억원이 몰려들었다. 이에 삼성증권은 스팩 투자 비중을 낮춰 일반인 대상 펀드를 추가로 출시했다. 지난 11일까지 6호 펀드가 나왔고 이들 펀드에 총 1000억원의 뭉칫돈이 순식간에 유입됐다.

증시에 '게릴라성' 부동자금이 고수익을 좇아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게릴라성 자금이 2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실망한 '앵그리 머니'가 직접 주식시장을 기웃거렸으나 올 들어선 '대어급' 공모주와 신상품인 '스팩'으로 쏠리는 양상이다. 특히 저평가된 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삼성증권 스팩펀드와 같은 틈새 상품들도 투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IPO · 스팩 공모시장 뜨겁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총 20개 공모 기업 중 7개 기업(스팩 포함)의 청약증거금이 각각 1조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체 공모 규모는 2조5000억원 정도였지만 청약증거금은 7배나 많은 18조8000억원가량이 들어왔다.

대한생명 공모주 청약에는 2007년 삼성카드(5조9560억원) 이후 최대인 4조2200억원이 몰렸고 지역난방공사 공모주 청약액은 2조5000억원에 달했다. 유가증권시장의 중소업체인 영흥철강 모베이스 인포바인 등의 청약증거금까지 1조원씩을 넘어서면서 이제 '1조원'은 청약시장에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지난주에는 청약증거금으로 1조329억원이 몰린 디지탈아리아가 올 들어 최고인 89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뜨거운 공모 열기를 재확인시켰다.

스팩시장도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첫 상장 공모에 나선 대우스팩이 공모주 청약에서 1조1415억원을 끌어모으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린 데 이어 미래스팩과 동양스팩도 8000억~9000억원의 청약자금이 몰렸다.

증시가 6개월 이상 박스권에서 등락을 거듭하자 지수가 일정기간 크게 빠지지만 않으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ELS에도 자금이 꾸준히 몰리고 있다. 지난 1월 ELS는 1조7000억원가량 발행되면서 월간 기준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2월에도 1조5000억원가량 발행됐다. 이달 들어서도 자금이 꾸준히 들어와 삼성증권은 작년 1분기 ELS 판매액보다 이미 3배 이상 많은 판매실적을 올렸다.

◆MMF 올 들어 10조원 증가

투자처를 찾아 헤매는 부동자금이 단기적으로 머니마켓펀드(MMF)에 머물면서 올 들어 MMF 잔액이 10조원 이상 급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MMF는 작년 말 71조6905억원에서 지난 18일 81조8579억원으로 불어났다.

MMF 자금 흐름은 상장사들의 공모 일정에 따라 크게 출렁이고 있다. 지난 12일 하루에만 1조5000억원 이상 급증했다. 대한생명 공모주 환급금이 대거 MMF로 유입된 때문으로 분석된다. 박종현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산이 침체돼 있고 주식시장마저 1700선을 쉽게 넘지 못하자 증시 부동자금이 MMF에 잠시 머물며 고수익을 좇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전체 유동성에서 증시 거래대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1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도 게릴라성 자금이 급증했다는 방증이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전체 유동성 대비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 비중은 이달 들어 0.16%로 떨어져 2007년 1월(0.14%) 이후 3년여 만에 가장 낮았다.

황상연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고수익 기회를 노리며 눈치를 보는 자금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최근 불어난 MMF 10조원을 비롯 이미 공모주 청약으로 주식을 배정받은 자금도 현금화한 후에는 공모주에 재투자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정환/김동윤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