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 베티'는 미국 드라마다. 베티 스와레즈라는젊은 여성이 패션잡지 '모드'에 입사,부딪치고 상처입으면서 성장해가는 내용을 다룬다. 베티의 원래 꿈은 시사잡지 기자.그러나 멕시코 이민 2세로 조건과 인물 모두 별로인 베티에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운 좋게 취업한 자리는 '모드' 편집장 대니얼 미드의 비서.

베티의 나날은 그러나 순탄하지 않다. 상사인 대니얼은 잡지 재벌 미드가의 상속인이지만 책임의식이 희박한 데다 절제가 안되는 인물이고,그런 대니얼을 견제하려는 또 다른 편집장 윌레미나와 그를 따르는 마크는 사사건건 베티를 괴롭힌다.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지만 때론 속임수에 넘어가고 연애 문제로 가슴앓이도 한다.

드라마는 대니얼과 윌레미나의 경쟁을 통한 직장 내 갈등을 보여주는 한편 베티와 대니얼을 통해 가족 문제를 조명한다. 베티네는 멕시코에서 건너온 불법 체류자로 아내를 잃고 혼자 두 딸을 키운 아버지와 싱글맘인 언니 등 네 식구.힘든 가운데서도 서로를 끔찍이 위하는 이들과 달리 대니얼네는 부자지만 제각각이다.

바람둥이에 권위주의자였음에도 불구,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 클레어는 외로움에 지쳐 수시로 사고를 치고,죽은 줄 알았던 형 알렉스는 성전환 수술로 여성이 돼 나타난다. 어쨌거나 베티는 일로 승부하면서 꿈을 향해 나아가고,대니얼과 윌레미나는 재산과 자리를 놓고 싸우지만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힘을 합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없어질 위기에 놓였던 여성부가 여성 · 청소년 · 가족 정책을 아우르는 여성가족부로 재탄생했다. 109명이던 직원은 211명으로 늘어났고 예산 또한 1108억원에서 4223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가족 모두가 행복한 사회,함께하는 평등사회'를 비전으로 '일과 생활이 조화롭고 여성 · 청소년 · 가족이 건강한 사회 조성'이란 목표도 세웠다.

여성정책 선진화,여성 일자리 창출 및 경제활동 증진,가족 기능 강화와 다양한 가족에 대한 포괄적 지원,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사회적 기반 구축,여성 · 아동 · 청소년이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 등 10대 정책과제도 내놓았다. 구체적 방침도 세운 만큼 차근차근 실천하겠지만 그에 앞서 분명히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여성가족부의 정체성 확립이 그것이다. 성매매 문제에 매달려 대다수 보통여성들에게 자신의 삶과는 상관없는 곳 내지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평을 듣는 부처는 딱하다. 여성단체 수장이 다음 장관은 내 차례라며 큰소리쳤다는 식의 얘기가 다신 들리지 않도록 조직 운영도 바꿔야 한다. 학연 단체연으로 얽혀 있었다는 그들만의 부처에서 벗어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바라는 보통 여성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부처로 확실히 거듭나야 한다.

방송을 비롯한 대중매체의 여성관에 대한 분석과 대안 제시도 신경써야 할 대목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선택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새로 임용되는 판검사의 60% 이상이 여성인데도 여전히 제힘 아닌 남성에게 의존하는 신데렐라 만들기에 급급한 드라마가 끊이지 않는 세상은 곤란하다.

백희영 장관은 "미래지향적으로 정책을 수립,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여성과 가족,청소년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지향적 정책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어글리 베티'는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했지만 여성과 일,가족,다민족사회,청소년,직장내 갈등 문제를 모두 보여준다. 여성가족부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이유다. 이런 일들이 이뤄지지 않는 한 여성경제활동 참가율 증가는 물론 109개국 중 61위인 여성권한척도,134개국 중 115위에 불과한 성(性)격차지수 향상은 물론 가족 모두 행복한 사회,함께하는 평등사회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