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히가시오사카(東大阪).이곳엔 약 7000개의 '마치코바(町工場;작은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2년 전 일본의 '월드클래스' 중소기업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소개로 찾아간 이곳의 첫 인상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건물이 대부분 작고 낡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무슨 월드클래스가 있을 것인가. '

간사이홍보센터 여직원의 안내로 한 공장을 찾았다. 1층 공장 옆으로 나 있는 좁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자 2층에 식당이 나타났다. 가장자리의 선반 위엔 제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아오키라는 이 회사의 아오키 도요히코 사장 명함엔 환갑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우주를 향해 비상하는 '우주소년 아톰'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작은 쇳조각을 한줌 들고 왔다. "서울에서 오신 기자 양반,이들의 가격이 얼마쯤 할 것 같소." 볼펜 스프링 10분의 1정도 크기의 원통형 쇳조각들이었다. "대충 몇만원쯤 하겠지요. " 그 사장 왈,"이걸 팔면 최고급 벤츠를 사고도 남습니다. "

혈관이 막혔을 때 삽입하는 '스텐트'였다. 초정밀제품이다. 제품 소개가 이어졌다. "이 부품은 보잉에 공급하고 저 부품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주선을 직접 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지요. "

아오키는 금형 및 금속가공업체로 종업원은 3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근의 10여개업체와 협력해 우주선을 개발하고 있었다. 일본의 하드록이나 아테쿠토 일본미크로코팅 쇼와진공 등은 한국 중소기업보다 건물이 낡고 작았다. 그런데도 이들은 특수너트,반도체 포장용기,정밀 코팅,진공증착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일본엔 이런 업체들이 부지기수다.

한국은 미국 및 중국과의 교역에서 매년 100억~200억달러의 흑자를 낸 뒤 고스란히 일본에 갖다 바치는 무역구조를 갖고 있다. 작년엔 환율효과 덕인지 이런 일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오랫동안 이 구조는 철옹성처럼 굳어져 왔다. 여기엔 기계와 부품 · 소재의 역조가 깔려 있고 그 뿌리엔 마치코바들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무역흑자가 일본을 추월하고 삼성전자가 일본 전자업체들을 압도하며 일본 제조업의 상징인 도요타와 소니마저 어려움을 겪자 곳곳에서 들뜬 분위기가 감지된다. 게다가 오는 4월1일부터 일본 경제산업성에 한국 산업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실'을 설치한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이제 우리는 일본을 넘어섰다'라든지 '일본은 한물갔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400만 중소기업들이 혼이 담긴 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 석권에 나서고 있고 그 밑을 튼튼한 마치코바들이 받치고 있는 한 일본은 무너질래야 무너질 수 없다. 이들은 이미 태평양전쟁 중 제로센 전투기와 세계 최대 전함을 만들지 않았는가. 일본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만심은 금물이다. 이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없이 경험해왔다.

일본을 진정으로 넘어서기 위해선 일본 마치코바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도금 열처리 주물 단조 염색 등 기반기술을 다루는 한국 마치코바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기본이 튼튼하지 않으면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게 역사의 준엄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